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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과 가톨릭 성직자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1.21 16:28
  • 수정 2019.01.26 06:53
  • 호수 1474
  • 댓글 4

신부가 산스크리트어 책 번역
역대 ‘불교학 대가’ 신부 다수
교계엔 이웃종교 전공자 드물어

최근 불교 원전을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가톨릭대학교출판부가 펴낸 ‘산스크리트어 통사론’이 그것이다. 초기경전이 주로 팔리어로 쓰였다면 대승불교는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쓰였다. 인도불교나 인도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산스크리트어를 모르고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 이유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5~4세기 파니니라는 불세출의 문법학자가 출현해 고전 산스크리트 문법을 체계화했고, 놀랍게도 그것은 오늘날까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통사론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그것을 보완하는 책으로 야곱 사무엘 스파이져(1849~1913) 박사가 1886년 펴낸 ‘Sanskrit Syntax’가 연구자들의 길잡이가 돼주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통사론 참고서로서 가치가 높지만 본문의 철자·편집·구성이 복잡하고, 방대한 분량의 문법 설명과 실례들을 이해하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산스크리트 상급자들에게 유용할 뿐 초·중급자들에게는 접근조차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스파이져 박사의 저술이 130년 만에 우리말로 번역됐으니 연구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깔끔한 편집에 꼭 필요한 주석들까지 달렸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수요자가 많지 않은 이 책을 일반 언론이 관심을 갖고 소개한 것은 번역자가 가톨릭 신부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번역자인 박문성 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95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런 그가 1998년 동국대 불교학부에 편입해 공부하고 2007년 대학원에서 인도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2008년과 2015년 도쿄대학 인도문학연구실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가톨릭대 동양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박 신부가 난해한 번역 작업에 뛰어들어 2007년 2월 초벌 번역을 마치고 다시 10여년간 오역을 줄이기 위해 재검토와 수정을 반복한 끝에 이 책을 펴냈으니 불교학계로서는 찬사를 보낼 일이다.

사실 오늘날 불교학계는 가톨릭 성직자들로부터 받은 학문적 성과가 적지 않다. 18세기 이후 서구사회는 동양에 많은 성직자들을 파견했다. 이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효과적인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중엔 불교사상에 매료돼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한 성직자들이 적지 않다. 1732년 근대적 의미의 첫 산스크리트 문법서를 펴낸 존 행스렌던(1689~1732) 신부를 비롯한 ‘불교학 대가’들이 속속 등장했다. 아비달마 연구의 체계를 세운 프랑스 루이 드라발레 뿌생(1869~1938) 신부, 고 이기영 박사의 스승으로 인도불교사를 집대성하고 ‘해심밀경’ ‘섭대승론’ ‘대지도론’ 등 숱한 경론을 불어로 번역한 에띠엔 라모뜨(1903~1983) 신부, 선(禪) 연구로 유럽에 명상 붐을 일으킨 토마스 머튼(1915~1968) 신부 등 많은 가톨릭 사제들이 근대불교학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국내 가톨릭계에도 불교에 밝은 성직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박문성 신부 이외에도 초기불교를 연구한 곽상훈 신부, ‘입보리행론’을 연구한 이영석 신부, 일본 도겐 선사를 연구한 최현민 수녀,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능가경을 연구한 최동석 신부도 불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직자들이다. 여기에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인 서명원 신부도 성철 스님을 연구한 가톨릭 불교학자라 할 수 있다.

이재형 국장 

이들은 불교와 가톨릭을 비교 연구하는가 하면 이웃종교의 장점을 가톨릭 교단에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에는 다른 종교에 정통한 불교학자나 스님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웃종교로는 받아들이지만 궁극적 가치로는 인정 못하겠다는 ‘종교적 배타성’이 작용할 수도 있다. 허나 우리가 이웃종교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많다.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불교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 무엇보다 상대 종교를 모를 때 그 종교에 흡수되거나 극단적인 대립으로 나타났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mitra@beopbo.com

 

[1474호 / 2019년 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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