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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홍사성의 ‘결제(結制)’

기자명 김형중

출가자 안거 재가자 삶으로 끌고 와
우리 일상사가 수행의 삶임을 노래

딸 산바라지와 손주 돌봄이
인욕바라밀 실천하는 수행
인생살이를 동안거에 비유

작은딸
산바라지 간
아내가 돌아온다

내일부터
만행 끝내고
결제에 들어간다

동안거
몇 십 번인데
아직도 먼 성불의 길

지금 이 순간 전국의 100여개 선방에서 2000여명의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가 있다. 안거(安居)는 인도에서 비롯되었다. 인도에서는 4월16일부터 3개월, 90일 동안이 우기이므로 외출 때 자신도 모르게 작은 벌레를 밟아 살생을 하게 되므로, 그 기간에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앉아 좌선 수행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여기에 겨울 날씨가 추운 중국에서는 10월16일부터 이듬해 1월15일까지 동안거(冬安居)를 더하게 되었다. 

스님들은 동안거와 하안거 6달 참선 수행을 않으면 승려 자격을 운운할 정도로 중요시한다. 근래 재가불자들이 안거에 참여하여 참선 수행을 하는 사찰이 있지만, 재가신도는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홍사성(1951~현재) 시인은 ‘결제(結制)’를 통해 스님들 동안거의 수행을 재가자의 가정으로 끌어왔다. 기발한 착상이요, 불교의 생활화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불법 또한 중생을 떠나 별천지에 있지 않다. 

시인은 우리 인생살이를 동안거 수행에 비유하고 있다. 매년 겨울이 오면 동안거를 맞게 된다. 그래도 부처되는 길은 멀고 먼 현실이다. ‘성불’은 이 시에서 완성된 삶을 뜻한다.  

시인은 1연에서 작은딸 산바라지를 하고 돌아온 아내가 이제 만행(萬行)을 끝내고 온 것에 비유했다. 만행(萬行)은 안거를 끝내고, 수행의 긴장을 풀고 속세에 나가 세상사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확인해보는 일종의 수행인데, 방학(放學)의 뜻으로도 쓰인다.

2연에서 “내일부터/ 만행을 끝내고/ 결제에 들어간다”고 읊고 있다. 안거의 시작을 결제(結制)라고 하고, 끝을 해제(解制)라고 한다. 작은딸 산바라지는 즐거운 만행에 해당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뼈를 깎는 동안거의 시작인 결제가 시작된 것이다. 큰딸의 산바라지와 손주 육아돌보미를 하느라 심신이 시달렸다. 그런데 또 작은딸이 아이를 낳아 아내가 산바라지를 마치고 어제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기뻐해야 할 일인데 아내는 또 엄동설한에 인욕바라밀을 실천하는 동안거 결제를 맞게 되었다고 읊고 있다.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 육십을 지나 이제는 쉬고 즐겨야 할 나이의 아내가 자식을 위하여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시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일을 고상하게 어머니로서 성불(成佛)을 위한 안거 수행의 결제라고 하였다. 삶 속의 일상사를 종교적 수행에 비유하여 진지하고 거룩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혼도 못 하고, 아이도 낳지 않고 사는 젊은 아들딸이 많다. 손주 구경도 못하는 부모가 많이 있다. 그러고 보면 부모가 손주 육아돌보미를 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요, 완성된 삶을 이루는 한 부분인지 모른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동안거 해제법어에서 “참선은 선방에서 좌복에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오고 하는 일상생활 가운데에 각자의 일을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시인은 불가의 선방에서 이루어지는 동안거 결제와 성불의 의미를 재가자가 하는 일상사에 끌고 와서 부처가 되어가는 수행의 삶임을 멋지게 읊고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74호 / 2019년 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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