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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마음이 운전자인가

기자명 이제열

마음은 운전자, 몸은 자동차
비상식적 · 비논리적인 견해
몸과 마음은 연기적인 관계

살다보면 견해가 바뀌는 일들이 종종 있다. 과거에는 철썩 같이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나 판단이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것들이 적지 않다. 과거에 스승이셨던 스님을 모시고 지낼 때였다. 포교 관계로 미국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미국의 한인 신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스님과 법회장소를 가는데 스님이 운전하는 신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운전하고 있지? 차는 운전수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잖아요? 마찬가지야. 이 몸뚱이는 자동차고 마음은 운전수지! 온종일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마음이 몸의 운전수니 차만 잘 몰지 말고 몸도 잘 운행해야 합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스님의 말씀이다. 당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지만 불교의 과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줄을 안 것은 20년 세월이 훌쩍 지나고서였다. 그렇다고 스님을 폄하하자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스님도 스승들로부터 그렇게 배웠으니 그리 말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견해는 비단 내가 모시던 스님만이 지녔던 사고는 아니다. 불교계를 살펴보면 이렇게 스님처럼 몸을 운전자에 마음을 자동차에 비유해 설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몸은 마음이 시키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몸은 그저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로봇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비유가 정말 옳은지를 한번쯤 진지하게 사유해 본다면 참으로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점을 금방 알게 된다. 그것은 자동차를 운전자가 끌고 가는 행위만 보았지 자동차가 운전자를 끌고 간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자동차를 끌고 가지만 동시에 자동차가 운전자를 끌고 가기도 한다. 자동차는 운전자의 조종에 의해 달리고, 운전자는 자동차의 기능에 의해 달리는 시스템이다. 이는 자동차와 운전자와의 관계가 일방적인 주종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 관계, 즉 철저히 연기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운전자를 포함한 모든 것이 자동차가 달리는데 필요한 부품이며 구성요소일 따름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운전자가 잘못해서 자동차가 망가지지만 때로는 자동차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운전자가 죽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달리는 도중 자동차가 이상이 생기면 제아무리 운전기술이 뛰어난 운전자라 해도 자동차를 통제할 길이 없다.

몸과 마음도 이와 같다. 몸은 마음에 의존하고 마음은 몸에 의존하기에 마음이 없이는 몸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과 몸의 관계를 운전자와 자동차와의 관계에 비유해 설법하는 행위는 적절하지 않다.

이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에 비춰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여기 흰 소와 검은 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 두 마리의 소는 한 밧줄로 묶어져있다. 이때 흰 소는 검은 소에 묶였고, 검은 소는 흰 소에 묶였다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묶인 것이 두 소들 간의 관계이다. 유명한 ‘법구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중생들의 몸은 마음에 묶여있고 마음은 몸에 묶여 있다. 때문에 중생들은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당장 자신의 몸에 암과 같은 무서운 병이 생겼다고 상상해보라. 두려움과 깊은 절망에 휩싸일 것이다. 반대로 큰 충격을 받아 마음에 공황장애와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이 생겼다면 잠을 제대로 못자고 식욕도 급격히 떨어져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된다.

마음을 “우주의 근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몸은 “가죽주머니” “똥자루” “고깃덩어리” “송장”으로 불러서야 되겠는가? 마음이 소중한 만큼 몸도 소중하다. 몸과 마음을 차별해 생각하는 것은 바른 견해가 아니다. 몸과 마음의 연기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경전을 읽거나 뼈를 깎는 고행을 했더라도 찬탄 받을 일은 아니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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