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안색 부드러워야 부드러운 인연이 다가옵니다”
“말과 안색 부드러워야 부드러운 인연이 다가옵니다”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9.01.29 11:11
  • 호수 14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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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㉞

관무량수경에 삼복 중 제일
부모님께 효도 봉양하는 것

돈이 많고 적음에 분별없이
타인을 도울 땐 기꺼워해야

이 시대 사람들 흥분 잘하니
대화할 땐 조급증 다스려야
정공 스님은 불자라고 하면 재산이 많든 적든 탐심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와 형제, 부부와 가족 간에 서로 공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서로 미워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世間人民 父子 兄弟 夫婦 親屬 當相敬愛 無相憎嫉)”

이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해야 합니다. “관무량수경”의 삼복(三福) 가운데 제일구는 부모님께 효도 봉양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형제, 부부와 가족은 모두 과거 생에 매우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인연이 없으면 한 집안 식구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연은 매우 복잡하고 갖가지로 변합니다. 좋은 인연은 악연으로 변하고, 악연도 좋은 인연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안팎의 역량에 달려있습니다. 안으로는 깨달음에 기대어야 하고 밖으로는 선지식에 기대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집안 식구가 되면 네 가지 관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연은  은혜를 갚는 관계, 원수를 갚는 관계, 빚을 독촉하는 관계, 빚을 갚는 관계로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이런 관계가 없으면 한집안이 되지 않습니다. 

은혜를 갚는 관계는 효자 현손으로 아버지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순하여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행합니다. 그러나 원수를 갚는 관계는 패륜아로 집안을 망칩니다. 심한 경우 집안이 풍비박산이 납니다. 빚을 독촉하는 관계는 빚을 독촉해 마치고 곧 죽습니다. 빚진 것이 적으면 어릴 때 죽고, 빚진 것이 많으면 대학 졸업까지 키워서 일을 할 만 하니 곧 죽습니다. 빚을 갚는 관계는 어릴 때는 부모님에 대해 공경심이 없고 존경하지 않지만, 다 성장해서는 부모님을 공양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을 줍니다. 빚이 많으면 자식이 매우 넉넉하게 돌보아 매우 풍족하게 쓸 것입니다. 빚이 적으면 돌볼 때마다 까칠하게 따집니다. 한 달에 대략 생활비로 몇 십만 원이면 충분할 텐데, 넉넉히 주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는 사회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친척이나 친구는 조금 먼 관계입니다. 선연이든 악연이든 선지식을 만나면 이 선연은 더욱 좋아지고 악연도 좋은 관계로 바뀝니다. 과거의 나쁜 관계는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라” 가르치십니다. 서로 용인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은 성현이 아니므로 허물을 피할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덕을 함양하여 원한이 맺힌 사람을 감화시켜야 합니다. 

“재산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서로 도와야 하고, 탐내거나 아까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有無相通 無得貪惜)”

첫째 물질적인 것으로 나에게 재물이 많고 그가 부족하면 그를 도와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둘째 정신적인 것으로 서로 지원하고 위로하여야 합니다. 나에게 재능이 있고 그가 없다면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탐심이 있어서는 안 되고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돕고 최선을 다해 도우면 반드시 이롭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려운 일로 쉽지 않습니다. 제가 불교를 처음 접할 때 첫 번째 스승님인 장가대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불법은 대단히 수승합니다. 저는 불법을 매우 배우고 싶습니다. 불법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저는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 어르신은 30분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30분이 지나 마음이 안정되었고 정말로 망념이 사라졌습니다. 그의 교수법은 매우 특별하였습니다. 먼저 정신을 집중하여 안정된 후에 저에게 말했습니다. “있다(有)!” 이 한 글자를 말하고 난후 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욱 정신을 집중하였습니다. 대략 5분을 기다리자 비로소 “간파하고 내려놓으라(看得破 放得下)!” 이 여섯 글자를 말씀하셨습니다. 대략 또 10여분이 지난 후 그는 저에게 “보시하라!” 단 두 글자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작별을 고할 때, 그 어르신이 저를 대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제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내가 오늘 너에게 여섯 글자를 말해주었으니, 너는 6년 동안 착실히 실천해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매우 감동을 받아 돌아가서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종전에 저는 보시는 고사하고 인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해서 모든 돈으로 책을 샀지만, 책을 남에게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책을 빌려주면, 책이 더럽혀질 수 있어 빌려주기 싫었습니다. 지금은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책을 남에게 빌려줍니다. 그러나 제가 본 책만 빌려주지 새로운 책은 빌려주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보시를 실천하고서 그 후 저는 천천히 새로운 물건도 보시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구입하여도 다른 사람이 보고 싶으면 빌려 줄 수 있고, 안 돌려주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저의 인색함은 엷어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매우 어렵습니다. 저에게 현재 조금 복보가 있으면 이 복보는 장가대사께서 가르치신 대로 보시를 닦은 인으로 얻은 과보입니다. 이는 제가 여러 해 동안 수행하여 직접 체험한 것으로 완전히 사실입니다. 

“말과 안색을 늘 부드럽게 가지고 서로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言色常和 莫相違戾).”

사람을 대할 때 화목해야 하고, 언어는 부드러워야 합니다. 특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들뜨고 조급하여 쉽게 흥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자칫하면 그들에게 미움을 사서, 골치 아픈 일이 즉시 생기므로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윤리적인 관계는 현재 추구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아들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지금은 아들을 친구로 대해야 합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친구로 도반으로 보아야 하며 종전의 윤리적인 태도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표준을 가지고 그를 보는 가운데 마찰이 생기고, 세대 차이가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곳곳에서 현실을 살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관념, 견해, 생각을 살펴야 하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눈높이를 내려야 합니다. 예전에 학불(學佛) 할 때 우리는 정말 머리를 조아리고 불법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병남 선생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불법을 중생에게 소개할 때 그들이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기다리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실로 이와 같아  오늘날 정토종에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불법을 전합니다. 먼저 이 시대 사람들을 이해한 후 불법을 소개하여 천천히 깨닫게 해야 그들이 불법에서 진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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