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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카이호 유쇼의 ‘조주구자도(趙州狗子圖)’

기자명 김영욱

이름만 다를 뿐 모든 게 불성이다

조주 스님과 개·질문하는 스님
간략한 필선·가사 색감 사용해
흥미로운 이야기 탁월하게 전달

카이호 유쇼 작 ‘선종조사·산성도병풍(禪宗祖師・散聖圖屛風)’ 중 ‘조주구자도’, 종이에 먹, 107.2×51.5㎝, 1613년.
카이호 유쇼 작 ‘선종조사·산성도병풍(禪宗祖師・散聖圖屛風)’ 중 ‘조주구자도’, 종이에 먹, 107.2×51.5㎝, 1613년.

滄海何難測(창해하난측)
須彌豈不攀(수미기불반)
趙州無字話(조주무자화)
鐵壁又銀山(철벽우은산)

‘푸른 바다 깊이 재는 것이 무엇이 어렵고 수미산을 어찌 오르지 못하겠냐마는.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만은 쇠와 은으로 된 절벽과 산이로구나.’ 무주(無住, 1623~?)의 ‘혜 선사에게 보이다(示慧師)’.

선객(禪客)은 누구나 하나의 화두(話頭)를 지니고 살아간다. 화두는 문자 그대로 말보다 앞서가는 것이다. 즉 언어 이전의 내 마음을 잡는다는 의미로 풀어낼 수 있다. 선객이 마음을 잡으면 곧 깨달음에 이른다. 그 길에 이르도록 참선하며 진리를 찾는 하나의 방안이 화두이다.

불교의 선종이 출현하고 등장한 화두만 1500여개에 이른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화두가 ‘조주구자(趙州狗子)’이다. 달리 말하면 ‘조주무자(趙州無字)’, ‘조주유무(趙州有無)’라고도 부르지만,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로 익히 알고 있다. 이 화두는 개도, 가죽도, 불성도, 유도, 무도 모두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불성으로, 그저 유와 무라는 글자에 현혹되지 말고 이를 깨뜨려야 견성(見性)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스님이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조주는 “있다”고 대답했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불성이 있다면, 어찌 가죽 안에 들어있습니까?”라고 하니, 조주가 답했다. “그가 알면서도 범했기 때문이다.”

다른 스님이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조주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스님이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어찌 개는 없습니까?”라고 하니, 조주가 말했다. “개에게는 업식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하는 선화 중에서도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탁월하게 그린 작품이 카이호 유쇼(海北友松, 1533~1615)의 ‘조주구자도’이다. 화면에는 개를 바라보는 세 인물이 서 있다. 오른쪽에 나무 지팡이를 쥐고 있는 인물이 조주이고, 맞은편에는 그에게 질문을 건넨 두 스님이 있다. 농담의 간략한 필선(筆線)과 가사의 색감을 살린 먹의 사용은 화면에 담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적은 필선으로 인물의 형상을 정확하게 살려내는 감필체(減筆體)로부터 비롯된 카이호 유쇼만의 필법과 분위기는 보는 이를 편안하게 만든다.

조주구자는 지눌(知訥, 1158~ 1210) 이래 한국 선종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화두였다. 잘 알려진 길에는 길손 또한 많이 몰린다. 수많은 사람이 ‘조주구자’를 화두로 삼았다. 그렇다고 누구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덧 누구나 ‘무!’라고 외치면 깨달았다고 여기고, 그 깨달음으로 자신과 남을 쉽게 속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 방울의 물이 저 넓은 바다일 수 없고, 한 조각의 돌이 저 거대한 산일 수 없다. 하물며 조주구자의 ‘무’자는 어떠하겠는가. ‘무’ 한 글자를 아낌없이 버리기가 진실로 힘든 일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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