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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라훌라의 탄생과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기자명 김준희

훌륭한 성장 바라는 아버지 사랑 선율에 담아

쇼스타코비치, 소련체제 음악가
1957년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따뜻한 감성 느낄 수 있는 작품
피아노 기교 등 서정성 총망라

아들 막심의 생일에 맞춰 작곡
아들 위한 아버지의 마음 담겨
수행 길 나선 라훌라 안내하는
아버지 부처님의 부성애 연상

라훌라 출가과정을 묘사한  부조(왼쪽,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예술박물관 소장).

사문유관 이후 12년이 흘렀을 때, 29세의 고타마 태자는 야소다라와 사이에서 첫 아들 라훌라를 얻게 된다. 출가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 때문이었을까, 결혼 후 10년이 지나서야 보게 된 첫 자식이었다. 경전에서는 “속박을 낳았구나. 그러나 이 새로운 속박이 다른 사람에게는 위안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라훌라’라는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장애’를 뜻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의미가 단순히 해가 되거나 앞을 가로막는 걸리적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의 귀족들은 ‘아슈라마’라고 하는 규칙에 따라 노년기에 출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처님은 훨씬 이른 29세에 출가를 하게 되었으니 당시의 브라만교 사회의 규범을 어긴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사회에서 대를 잇는 아들을 남기며 왕족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 것이 한편으로는 출가를 강행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 제2번 중 첫 번째 곡인 왈츠를 들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와 ‘Eyes Wide Shut’의 OST에도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 곡은 약간 우수에 찬, 그러나 너무 슬프지 않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두 마디의 왈츠 리듬 후에 곧바로 이 곡 전체를 아우르는 색소폰의 고독에 찬 선율이 등장하고, 곧이어 플루트, 오보에, 피콜로 등이 응답한다. 현악기를 포함한 오케스트라 전체가 이 선율을 반복하고, 이 담담한 c단조의 주제가 끝나면 Eb장조의 또 다른 주제가 등장한다. 관계조로의 조성의 변화와 조금은 밝은 분위기로의 전환 이외에는 크게 대조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c단조의 첫 주제가 반복될 때에는 트롬본이 주선율을 담당한다. 색소폰과 잘 어우러지는 톤을 가진 트롬본의 선율에 이번엔 금관악기가 화답하며, 다시 한 번 주제를 반복하면서 이 곡은 마무리된다.

보통 어떤 곡의 주제는 강한 암시나 또렷한 주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 4분이 채 되지 않는 왈츠는 두 개의 주제가 등장하지만 두 주제 모두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치 이 곡 두 주제의 선율들은 듣는 이의 뇌리에 이상하리만치 확실하게 남으며,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그러나 어떤 낮은 목소리의 암시를 담고 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한다. 어쩌면 일생의 ‘장애’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위험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단지 감당해 내야할 그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고타마의 아들 ‘라훌라’가 이 주제 선율과 같은 존재 아닐까.

쇼스타코비치는 구 소련체제에서 광폭의 시대를 살다간 음악가이다. 스탈린 체제에서, 그의 음악이 시대를 반영하거나 또는 시대의 요구를 따르거나, 반대로 시대를 비판했다고 평가되어지는 것과는 무관하게, 그의 음악에 대한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제 2번 작품 102이다. 1957년 작곡된 이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24년 전 작곡된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인 작품 35와는 사뭇 다르다.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그의 아들 막심.

협주곡 1번에서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특유의 추진력 있는 분위기 위에 피아노의 까다로운 기교와 재기발랄함,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타악기적 면모와 서정성을 총망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피아노와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마지막 악장까지 필요이상으로 밀도있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트럼펫 파트에도 그의 욕심이 가득 담겨있다. 신고전주의적 요소와 러시아 특유의 행진곡 리듬 등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음향은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도 역시 찾아볼 수 있지만, 두 번째 협주곡에는 곡 전체를 관통하는 ‘명료함’이 존재한다.

18분 남짓한 이 곡의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은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모든 선율이 유니즌(unison)으로 이루어져있다. 음악에서 유니즌 또는 옥타브가 뜻하는 것은 단순함과 강조, 단 두 가지이다. 또한 음향으로 실현되었을 때 듣는 이가 느끼는 것은 간결함과 투명함 그리고 정확함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아들 막심의 생일에 맞추어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들 막심은 그의 모스크바 콘서바토리 졸업연주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하였다. 

어린 아들을 위해 작곡된 이 곡은 흥미진진하고 발랄함을 갖춘 1악장과 지극히 아름다운 서정적인 2악장, 그리고 어느 정도 피아노 교습을 받은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알아차릴만한 하논 교재의 선율을 담고 있는, 쉼 없이 달려가는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하는 아들이 졸업연주회에서 훌륭하게 연주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어, 이 곡은 기교적으로도 과도하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연주자의 화려한 역량을 드러내기에 적합하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들 막심은 이 곡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고 지휘자로 성장하여 훗날 소련국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가 되어 아버지의 작품을 널리 알렸다. 1972년에는 묻혀있었던 교향곡 제 5번과 새로 발표된 교향곡 15번을 초연하여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서독 망명 후 아버지의 곡을 서구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졸업무대에서 연주하였던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을, 지휘자로서 이무지치 몬트리얼 관현악단을 이끌고 아버지를 피아노 협연자로 레코딩 하기도 하였다. 

일곱 살 어린 아들을 출가시킨 부처님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 사리풋타에게 아들을 맡겼다. 불교사 최초의 동자승인 라훌라에게 부처님은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수행 길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안내해 준다. 그 역시 부성애를 지닌 아버지였던 것이다. 라훌라는 아버지의 바람에 부응하여 수행의 완성자 아라한이 된다. 그리고 후세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의 자식에 관한 사랑은 절대적이다. 쇼스타코비치와 그의 아들 막심의 음악가로서의 인생과 아버지 부처님을 따라 같은 길을 걷게 된 라훌라의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절대적이고도 명료한 사랑, 부성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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