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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지막 길에 염주와 다라니 넣어주오”

  • 교계
  • 입력 2019.01.31 15:17
  • 수정 2019.02.02 10:09
  • 호수 1476
  • 댓글 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상징 김복동 할머니 가던 날

1월28일 저녁, 93년간의 삶 회향
직접 준비한 수의·염주·탑다라니로
유언 따라 불교식으로 장례 치러
마지막까지 스님에 감사 뜻 표해
굳건한 의지 담긴 호통·호소 남겨

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었던 김복동 할머니가 1월28일 오후 10시41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고단했던 생을 마감했다. 스님의 염불과 목탁소리가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제공.

“내 마지막 가는 길에 염주와 다라니를 넣어주오.”

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었던 김복동 할머니가 93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려놓고 정토로 향했다. 김 할머니는 끝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합법적 배상이라는 평생의 원을 이루지 못한 채 1월28일 오후 10시41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고단했던 이생의 연을 접었다.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은 스님의 염불과 목탁소리가 함께 했다.

1월30일 오후 3시 봉행된 입관식은 독실한 불자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불교의례로 진행됐다. 조계종 사회부장 덕조 스님과 사회노동위원 우담, 도철, 시경 스님,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효진 스님 등 5명의 스님은 40분가량 진행된 입관식에서 김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장엄염불로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독실한 불자였던 김 할머니의 상자 안에는 수의와 염주, 시신을 덮는 탑다라니가 담겨 있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 제공.

김 할머니를 모신 관 안에는 연꽃 8송이를 비롯한 아름다운 꽃들과 영가를 서방정토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이 그려져 있었다. 김 할머니는 일찍부터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 지인에게 “집 장롱 속에 있는 상자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할머니는 “내가 떠나면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관속에 함께 넣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 상자 안에는 수의와 염주, 시신을 덮는 탑다라니가 담겨 있었다. 본인이 직접 준비한 수의를 입고 평생을 간직한 염주를 목에 건 할머니는 탑다라니를 덮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생전 “난 부처님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14살 나이에 집을 떠난 딸을 걱정하며 김 할머니의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양산의 한 사찰에 들러 “딸이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김 할머니는 “그 간절한 기도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말을 종종 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 지몽 스님은 콜트콜택기타노동자 부당해고 문제해결 집회에 참석 도중 “할머니가 위독하니 기도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 20여 분 간 염불기도를 하며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 제공.

김 할머니 생전 마지막을 함께 한 이도 스님이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 지몽 스님은 콜트콜택기타노동자 부당해고 문제해결 집회에 참석 도중 “할머니가 위독하니 기도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가 20여분 간 염불기도를 하며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김 할머니는 기도가 끝나고 1시간 후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진행되는 수요시위에서 정기적으로 기도회를 봉행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며 할머니와 인연을 이어왔다.

김 할머니는 오랜 기간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힘써온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 마지막까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입관식 후 현금 50만원이 든 봉투를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에게 전달했다. 극구 거부하는 양 위원장에게 윤 이사장은 “할머니께서 스님이 오시면 반드시 대접하고 보시해달라고 남기셨다”며 “마지막 유품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유품이라는 말에 더 이상 사양하지 못한 양 위원장은 보시금을 입관식 후에 참석한 콜트콜택기타노동자 집회에 전달하고 노동자들과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김 할머니를 모신 관 안에는 연꽃 8송이를 비롯한 아름다운 꽃들과 영가를 서방정토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 탱화가 담겼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제공.

김 할머니는 혜진 스님과 나눔의 집에 살면서부터 피해자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개최되는 수요집회에 참석해왔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1940년 위안부로 연행된 김 할머니는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로 끌려 다니며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겪어야 했다. 종전 후 미군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1947년 8년 만에 귀향했다.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한 김 할머니는 1993년 위안부 피해자 중 최초로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1994년에는 일본 검찰에 책임자 고소고발장을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전시여성피해 인권문제와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었다.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상을 수상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진행되는 수요시위에서 정기적으로 기도회를 봉행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며 김복동 할머니와 인연을 이어왔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제공.

김 할머니는 “우리가 평생을 바쳐 싸워온 이유는 결코 돈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과와 법적 배상”이라는 굳건한 의지가 담긴 호소를 해왔다. 일본 측뿐 아니라 우리 정부에도 서슬 퍼런 호통을 멈추지 않았다. 2014년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위안부 문제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 등의 망언을 한 당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비판하며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김 할머니는 “국무총리 후보 사퇴도 하나님 덕으로 생각하고 청문회 이전에 물러나라”며 사퇴를 촉구했고 “자기 편에서만 총리 후보를 고르려고 하다 보니 이런 후보를 내세웠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도 꾸짖었다.

고 김복동 할머니
고 김복동 할머니

일본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지만 자비심도 잃지 않았다. 동일본대지진 때 성금을 내자고 가장 먼저 제안한 1호 기부자이고 평생 짬짬이 모은 재산을 재일동포들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이밖에 유엔과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등 분쟁지역 성폭력피해자 지원활동을 지속해 왔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분투해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의 주인공이다. 영화에서 김 할머니는 “내가 증거여, 내 몸이...여기 살아있는 모든 피해자가 증거여. 왜 증거가 없다고 하는거여!”라는 말을 세상에 외쳐 모두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은 "김 할머니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굴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간 참다운 보살이셨다"며 "우리 모든 불자들의 마음을 담아 극락왕생을 발원한다"고 말했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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