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가 1월28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한 김복동 할머니는 1993년 피해자 중 최초로 국제연합 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국제사회에 일본군의 만행이 처음으로 알려진 순간이었다.
1994년에는 일본 검찰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인권·평화운동가이기도 했던 김 할머니는 생과 이별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일본을 겨냥한 유언을 남겼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
유엔 인권위에서의 일본 만행 공개는 2년 뒤 큰 성과로 이어졌다. 1996년 2월 국제연합 인권위원회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관련해 피해국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상세한 내용은 6개 결정문에 담겨 있는데 첫 번째 결정문이 이 사안의 해결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 때 행한 행위는 국제법에 어긋나는 것이며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어진 4,5결정문에서는 ‘일본은 당연히 국가적 차원에서 피해자들에게 개별적 공식 사죄를 할 것’ ‘일본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관련 교과서를 개정하고 관련 문서 및 자료를 모두 공개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일본에 얼마든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었는데 정작 피해국의 김영삼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자행한 굴욕합의에 대해 ‘법적 책임 인정과 사죄가 빠진 졸속합의’라며 무효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일본에게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있다. 화해치유재단은 해산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정작 10억엔 반환 문제는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의 “끝까지 싸워 달라”는 유언을 뼛속에 새겨야 할 당사자는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나 관련 단체가 아니라 한국 정부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