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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시에서 ‘일상사가 수행’의 지혜를 얻다

  • 불서
  • 입력 2019.02.11 13:49
  • 수정 2019.02.11 13:51
  • 호수 1476
  • 댓글 2

‘다반향초- 차 마시며 향 사르다’ / 노현 스님 지음 / 모과나무

‘다반향초- 차 마시며 향 사르다’

어느 날 한 선사가 어제와 다름없이 새벽에 일어나 향을 사른다. 얼마쯤 지나 가지런히 앉아 다관에 찻잎을 넣고 차를 우려냈다. 그날따라 차 맛이 일품이다. 흡족한 마음에 향 하나 새로 사르고는 차 한 잔 들며 문 밖을 바라보니, 물가에 꽃이 피어 있다. 어제는 분명 보지 못했던 꽃이다. 설사 피어 있었다 해도 선사의 의식에 들어온 꽃이 아니었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꽃을 보며, 선사는 ‘아,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구나!’라고 생각한다. 

태백선원장 노현 스님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라는 옛 시를 소개했다. 그리고 어제의 일도, 내일의 일도 아닌 오직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직시한 그 선사에 감정이입하면서 이 옛 시를 “고요히 앉은 곳 차 마시다 향 사르고, 묘한 작용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피네”로 풀이했다.

이 책 ‘다반향초- 차 마시며 향 사르다’는 각화사 주지이자 태백선원장으로 정진하며 후학을 맞이하고 있는 노현 스님이 옛 선시 혹은 옛 이야기를 수행자의 직관으로 사유하고, 지금 현재에 충실할 때 일상사가 곧 수행임을 깨달을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하고 있다.

노현 스님은 11세에 각화사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출가 직후부터 전국 선방을 다니며 수행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각화사 주지를 맡으면서 다짐했다. “복덕을 쌓겠습니다. 선방 수좌스님 봉양하고, 가람 일구어가면서 모자란 덕도 조금씩 쌓겠습니다.” 

그래서 스님에게는 일상 속 모든 일이 정진이었다. 스승 탄성 스님을 보면서 배운 것이다. 출가 초기 어린 스님에게 스승은 가끔씩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지난번에도 제가 했는데 또요?”라고 하면, 스승은 그저 허허 웃고는 직접 청소에 나섰다. 노현 스님의 개성과 하심은 그런 스승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다. 남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 않고 직접 소매를 걷어붙인 대쪽 같은 스승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스님이기에 하루하루 삶을 꾸려가는 것이 수행과 하나임을 누구보다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

옛 선지식들의 시와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에 담아 사유하고 지금의 삶에서 반조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 역시 그런 일상사 덕분이다.
 

노현 스님이 옛 시와 이야기를 통해 일상사가 수행임을 보여주며 현재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 ‘다반향초’를 출간했다. 스님에겐 각화사 뒷산 포행 역시 수행의 일부다.

“한 가닥 봄소식이 섣달 전에 돌아오니/ 어느 곳의 추운 매화 눈 속에 피었는가/ 황혼에 홀로 서서 서정에 젖나니/ 달빛 아래 맑은 향기 끊겼다 이어지네.” 제월경헌 스님의 이 시를 소개하면서 통도사 홍매를 시작으로 선암사 무우전 담을 따라 핀 매화, 화엄사 각황전 홍매, 구층암을 지나 자리한 길상암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 홍매 등 눈 속에 핀 설중매와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 이야기를 전하고, 선시 속 매화가 바로 깨달음을 상징하는 이유를 들려 줄 수 있는 것 또한 일상을 수행으로 삼아온 스님이기에 가능하다.

스님은 각화사의 일상 역시 졸린 눈 비비며 차 한 잔 마시고, 향 피우며 부처님께 절하고, 밥 먹고 나서 밥그릇 씻고, 할 일 있으면 하고 없으면 조용히 앉아 있고, 그러다 졸리면 잘뿐이라며 절집의 삶이 특별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특별할 것 없는 이 맛을 과연 몇이나 알까?” 하고 되묻는다.

“각화사에서 서암으로, 다시 동암으로 이어진 길을 거닐고 있습니다. 어제 만났던 고라니와 다람쥐, 오늘도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만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고정된 형상이 없으니 나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제법무아요 제행무상입니다. 욕심 낼 까닭이 없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출가, 오분향, 감로차, 다반향초, 황벽매화, 청빈, 청야음 등을 주제로 시와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속에 담긴 뜻과 의미를 되새기며 부처님 법이 상징하는 진리의 세계를 드러냈다. 일상사가 곧 수행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에서 진리가 멀리 있지 않음을 새삼 깨달으며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할 이유를 배울 수 있다. 1만3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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