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수행 홍영표-상
주력수행 홍영표-상
  • 최진아
  • 승인 2019.02.11 15:07
  • 호수 14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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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중 ‘반야심경 입문’ 읽어
과학과 통하는 혜안으로 감탄
아내의 아픔 덜고자 절 찾다가
구인사서 관음정근 계기 만나
89, 흥도

유교 집안에서 출생하여 40대 초반까지는 종교에 대해 무관심한 평범한 생활을 해왔다. 1960년대 일본 유학 중 지도교수로부터 ‘반야심경 입문(마쓰바라다이도松原泰道 저)’을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발전된 불교학 연구에도 시간에 쫓기는 여건 속에서 도저히 책 읽을 기회를 만들기 어려워 거의 읽지를 못하였다. 

‘반야심경 입문’은 늘 마음 한 곳에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마침 명절 연휴가 됐고, 시간을 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20세기 초에 발표한 상대성원리 가운데 하나인 ‘에너지와 물질(질량)의 등가성의 법칙’을 그대로 나타낸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구절에 이르러 부처님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때부터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인생에 불교가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책에서는 겨우 20세기 초에서야 우주는 에너지와 파동의 흐름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미 2500여년 전 부처님께서 그 진리를 설파하셨음이 소개되어 있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불교를 다시 생각하고 주지해야만 했다. 상대성원리를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1g의 물질을 에너지로 바꾸면 약 2000t의 석탄이 보통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열)에 필적하는데, 이는 물질(색)은 에너지(공)에 다름 아님이 입증된다. 

하지만 이 같은 불교의 이치에 공감하면서도 신행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관련 서적을 곁에 두고 읽는 것이 불교 공부의 전부였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상에서 불교 서적을 읽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바쁜 직장 생활이 계속되었기에 사찰을 찾는다거나 수행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불연이 삶에 쑥 들어왔다. 1977년경 아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렸다. 협심증과 유사한 질환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겪어야했고, 여러 병원을 오가며 입원과 치료를 병행했지만 별다른 효험은 없었다. 어떻게든 아내의 질환을 낫게 하고 싶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무속적인 처방을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연과학을 전공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거절했다. 좀 더 시설이 잘 갖춰진 병원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러던 중, 아내의 학교 동문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권유는 거절할 수 없었다. 절박한 심정이었다. 반신반의 상태로 부산 온천장 광명사에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게 생경했다. 사찰예절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선 법당이었다. 여러 가지 예의도 전혀 모르고 생전 처음 불교식 예경과 수행을 시도하려고 했다. 어쩌겠는가. 하나하나 지도를 받았다. 낯선 만큼 모든 게 어색했다.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나름대로 수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법사로 오신 덕수 스님과 면담을 하고 조언을 얻어 다른 활로를 찾아 나섰다. 구인사에 가기로 결심했다. 

급하고 절박했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은 멀고도 험했다. 1970년대 후반의 교통과 도로의 여건에서 쇠약한 환자의 수송은 택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저녁때가 되어서야 구인사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입방 절차를 마치고 5박6일의 기도를 시작하였다. 2일 정도가 경과하였다고 기억이 되는 시기였다. 신기한 현상을 겪게 되었다. 아내는 기력이 쇠약해서 평지에서조차 보행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환자인 아내가 하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적멸보궁에 다녀왔어요.” 적멸보궁은 구인사의 주된 수행공간에서 성인 걸음으로도 30분 정도 오르막길을 오르고 올라야 도착하는 전각이었다. 그런 곳에 다녀왔다는 아내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적멸보궁에 오르는 아내와 동행을 해보았다. 직접 눈으로 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내가 병약한 몸으로도 나보다 더 수월하게 다녀오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였다. 부처님의 가피를 몸소 체험하게 됨으로써 심적 부담이 말끔히 사라졌다. 관음정근에 몰입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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