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궁이와 조왕신, 그리고 아그니
6. 아궁이와 조왕신, 그리고 아그니
  • 현진 스님
  • 승인 2019.02.11 15:13
  • 호수 14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교매개로 인도문화가 중국 거쳐 한국 정착한 용어

아궁이, 불의 신 아그니서
중국 조왕신 설화와 연결
불교와 직접적 관련 없지만
불교 포용력 보여주는 사례

아파트 문화가 들어서며 이젠 오래된 시골집이 아니고는 부뚜막을 갖춘 아궁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방이나 솥 따위에 불을 때기 위해 만든 구멍인 아궁이는 한옥에서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부엌 굴뚝으로 저녁 무렵 피어오르는 연기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어린 시절 아궁이 속 군불 사이로 감자를 구워먹은 기억과 외출했다 돌아와 엄동설한의 언 손을 녹이는 아궁이의 불길에 왠지 빠져들어 갈 것 같다는 경험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아궁이의 어원은 입을 뜻하는 우리 고유어인 ‘악[口]’에 ‘웅이’라는 조사가 붙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아궁이의 옛말은 ‘아귀’였다. 물론 아궁이 안에서 넘실대는 불길의 모습이 아귀(餓鬼)를 연상시키기도 하였기에 그리 불렸으리라. 하지만 아궁이가 입[口]이란 글자에서 왔다면 어원(語源)으로서의 관계가 다소 약하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우리 한글과 산스크리트어의 연관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인도에서 불의 신에 해당하는 아그니(agni)를 아궁이의 어원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옥에서 불의 신인 아그니가 머무는 곳을 찾는다면 당연히 아궁이가 첫손에 꼽힐 테니, 개연성이 전혀 없진 않다. 아그니에서 아궁이란 말이 나왔다고 그것을 불교용어라 보기까지는 뭐하지만 개연성을 찾을 수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설화 가운데 등장하는 가택신 가운데 부엌을 관장하는 신으로 조왕(竈王)이 있다.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여신이었던 고대의 부뚜막신에 중국에서 건너온 조왕의 개념이 더해져 초기엔 여신인 조왕이, 나중엔 중국과 유사한 남성이나 부부 모습의 조왕신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런 조왕신의 모습은 이젠 민간에선 찾아보기 힘든데, 사찰의 공양간인 후원에선 설령 아궁이가 없더라도 조왕의 탱화가 쉽게 발견된다. 한국불교에서는 좌우에 땔감의 신 담시력사와 요리의 신 조식취모를 거느린 조왕신의 모습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조왕신이 전래의 부뚜막신에 기반을 두고 있듯이, 중국의 조왕신 또한 부엌을 관장하는 중국 고유의 신에 불교를 통해 전래된 불의 신 아그니의 신화가 더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차피 생활에서 불이란 어디서건 귀중한 것이었기에 그에 대한 숭배와 몇 가지 설화 정도는 어느 민족이건 모두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인도 신화에서 불의 신 아그니는 불을 관장하는 신이자 불 그 자체로서, 숫양을 타고 2개의 얼굴에 7개의 혀를 가지고 하늘과 땅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으로 간주된다. 인도의 모든 제례에서 아그니는 첫 번째로 초빙을 받는 신이다. 제례에서 어떤 신에게 제사를 지내건 그 신에게 바치는 제물은 모두 아그니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인데, 제사를 지낼 때 공물을 불에 던져 넣으면 그 제물이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원하는 신에게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왕신에게도 이와 유사한 설화가 전해진다. 민간에서는 음력 섣달 23일에 부엌신인 조왕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한 해 동안 자신이 지킴이가 되었던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보고한 뒤 설날 새벽에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여긴다. 그래서 나쁜 일을 많이 한 집주인은 그 전날 아궁이에 엿을 발라둔다고 하는데, 아궁이는 조왕에겐 출입문인 동시에 입을 상징하므로 가게 되더라도 입이 열리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조왕신의 역할은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신봉되고 있다.

아그니도 조왕신도 부뚜막신도 어떻게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런데 불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도의 것이 중국으로 전해지고, 거기에 중국의 것이 더해져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와 다시 한국적인 정서마저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불교가 아닌 것을 불교(佛敎)로 만드는 불교의 포용력인 듯하다. 비록 그것이 사성제나 팔정도 같은 귀한 가르침은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