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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지리산 영신봉

기자명 임연숙

종주하며 느낀 백두대간 산수화로

한 달에 두 번씩 걸어서 종주
산행의 기억들 수묵화에 담아
숙선지·채색으로 사실감 더해

백범영 作 ‘지리산 영신봉’, 70×69cm, 숙선지에 수묵, 2018년.
백범영 作 ‘지리산 영신봉’, 70×69cm, 숙선지에 수묵, 2018년.

오랜만에 시원하게 여백을 살린 순수 담백한 수묵화 한 점을 만났다. 오랜만이라는 건 요즘은 이렇게 수묵으로만 그린 그림이 드물고 더구나 산수를 주제로 하는 작가도 드물고, 전통을 잇고 있지만 구태의연하다기 보다는 현대적인 느낌도 드는 작품이 드물다는 뜻이다. 눈 덮인 산자락에 범상치 않은 바위의 모습과 뒤편으로 보이는 소나무 가지를 보니 실제 그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제목도 지리산 영신봉이니 작가가 직접 산에 올라 그 감동을 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4년 전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해 두 번쯤 종주를 완료하였다고 한다.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산행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한 달에 두 번씩 한 번에 20km 정도를 10시간 이상을 걸어 백두대간의 풍경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왔다.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장엄한 국토의 모습을 느껴 보기도 하고 완만한 능선 위에서 멀리까지 조망해 보기도 하면서 자연을 충분히 느끼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통해 작가는 한층 더 깊이가 깊어졌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사람을 보면 보는 사람이 불편하다. 그림도 그렇다. 마음을 내려놓고 버리고, 가벼울 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과 같은 것처럼 힘을 뺀 그림에 편안함이 느껴진다. 작가노트에서 체력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하늘을 흐리게 처리한 것을 보면 날씨가 잔뜩 흐려 곧 눈이 또 쏟아질 것만 같다. 산수화 감상의 묘미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단순히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과 자연과 시가 하나가 되는 데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화가의 손끝으로 표현되었기에 그림과 함께 쓰인 시나 화제의 문장에 담긴 뜻을 알아야 감상의 묘미가 있다. 단순한 조형예술을 넘어 스토리가 있기에 눈으로만 감상해서는 안 되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시대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그런 산수화의 본래 의미보다는 시각적인 묘사나 극적인 효과, 조형적인 요소로 해석되는 경향이 많아졌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보다는 시대의 흐름이고 미감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흐린 하늘과 대변되게 작품의 하단은 눈 덮인 산길로 과감하게 여백처리를 하였다. 백두대간의 기상과 영신봉(靈神峰)의 한자가 보여주듯이 신령한 기운은 중앙의 바위에 담아 표현하였다. 이 주봉우리에서 흩어져 나온 듯 주변엔 작은 바위가 흩뿌려져 있다. 작가는 숙선지라고 하는 종이를 사용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 만든 종이다. 화선지 위에 아교와 백반을 갈아 넣은 물과 은분을 입힌 것으로 종이의 틈을 메워 잘 번지지 않고 채색을 여러 번 바를 수 있다. 여기에 종이 바탕에 은분이 입혀져 약간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바위산을 표현하는 데 있어 먹의 농담 변화나 물의 번짐의 부드러움보다는 강인하고 거칠거칠한 느낌을 준다. 눈이 살짝 얹힌 소나무 가지는 흐린 먹으로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은분이 입혀진 종이가 그런 눈 쌓인 잔가지를 더욱 감성적으로 보이게 한다. 

한번 가봐야겠다는 막연함으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는 작가에게 산수화에 생생한 이야기를 담게 하였다. 4년여 시간 동안의 산행 기억과 그 장소마다 담긴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는 즐거움과 신년을 맞아 어떤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볼까 하는 화두를 받아든 느낌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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