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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없는 관념으로 어찌 조사의 뜻을 알겠는가”

  • 교계
  • 입력 2019.02.18 13:28
  • 수정 2019.02.18 13:45
  • 호수 1478
  • 댓글 0

[무술년 동안거 해제법어] 고불총림 방장 지선 스님

결제대중들이 겨울내내 정진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겨울한기를 이겨내며 공부에 매진했을텐데 스스로 마음에 흡족합니까?

저는 얼마 전 서옹 큰스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활발발지(活鱍鱍地)를 새겨보았습니다. 대혜보각선사 서장 가운데 삼돌장(三咄狀)을 읽다가 그리 되었습니다.

더불어 대혜스님께서 묵조선을 비판하시고 간화선을 제창하신 뜻도 떠올렸습니다.

대혜스님께서 사셨던 시대는 그야말로 천하대란의 지경이었습니다. 금나라에게 수도인 변량을 함락당해 황제였던 휘종과 흠종은 잡혀갔고 양자강 이남으로 피란을 하여 겨우 조정을 꾸려 버티던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송나라는 국초부터 소극적이고 수세적인 풍조가 있었는데 오대십국의 혼란을 겪은 후 가급적이면 아무 일 하지않는 것을 좋아하는 송태조 조광윤때문이었습니다.그런 분위기가 나라와 사회에 가득했었고 점점 무사안일이 사회전반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게으른 것은 탈속(脫俗)으로 오도되고, 가만히 있는 것을 최고로 칠뿐 진취적인 기상은 죄악시 되었습니다.

본디 묵조선(黙照禪)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수행방법이었으니 삿된 선(死禪)이라는 말이 맞지는 않습니다. 저는 대혜종고스님께서 이런 비판을 왜 하셨을까 고민을 해봤습니다.

바로 사회뿐 아니라 절집 안에서도 마음쓰는 것 없이 종신토록 멍청히 앉아있던 그런 구태들을 쳐버리신 것으로 생각해봅니다.

한 마디로 대혜스님께서 말씀하신 활발발(活鱍鱍)은 당시 불교계와 나라와 사회에 던지는 일종의 시대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와 절집을 대혜스님께서 보셨더라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지 식은 땀이 흐릅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신과 수행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들도 대혜스님께서 일갈하셨던 삿된 선(死禪)을 행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우리 정진대중들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공에 체하고 고요함에 파묻혀(沈空滯寂) 큰 잉어가 꼬리를 쳐서 물살을 헤쳐나가는 그런 기상을 잃은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사자가 사냥을 할 때 한껏 움쿠렸다가 몸을 탁 펴면서 앞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사자빈신(獅子頻伸)이라고 합니다. 화두참구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관심없을 수좌가 어찌 그런 기상을 스스로 내버리는 것입니까!

공부를 잘못하는 이들은 마음이 끊어진듯한 경계를 집착하여(心行處滅) 주관의 세계에만 침잠을 합니다. 진짜 공부는 자신이 얻은 바의 경계도 탁 던져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시작입니다. 대혜종고스님께서도 당세에 많은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가사와 도첩을 뺏겨 군대로 끌려가 십수년간을 온갖 고생을 하셨고 풍토병 때문에 문도 50여인이 죽어가는 참담한 지경까지 다 겪어내셨습니다. 당신께서도 어찌 고요한 경계에 대한 유혹이 없으셨겠습니까!

하지만 진정한 수행이란 거듭 말씀드리듯 어디에도 막힘없고 얽힘없이 자유자재로 탁 치고 나가야 합니다 어찌 한 티끌이라도 남겨두겠습니까! 말장난과 헛된 관념들에 끌려들어가면 안됩니다. 오로지 실천 또 실천뿐입니다.

남양혜충국사께서 공봉스님에게 물으셨습니다.

“부처님이란 무엇인가?” (佛是甚麽義?)

공봉스님 답하길 “깨달음입니다.” (云, 是覺義)

혜충국사 왈, “부처님이 미한 적이 있었는가?” (佛曾迷否?)

답하길, “일찍이 미한 적이 없습니다.” (不曾迷.)

국사 왈, “그렇다면 어찌 깨달음이라 하는가?” (用覺作麽?)

공봉스님은 대답을 하지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대혜스님께선 “만약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찌 학(鶴)을 보겠는가?” (若不入水, 爭見長人)평하셨습니다.

실천없는 관념가지고 어찌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알겠습니까? 세상 속으로, 현실 속으로 나와야만 학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정진대중들은 이제 네모난 좌복 위에서 내려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결제동안 스스로 엄격히 살았을테니 산문을 나서면 마음을 풀어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늘 어느 처, 어느 시간에도 화두를 놓지말고 잘 살펴지켜나가십시오.

불조의 혜등이 꺼질까 염려되는 시절이니 늘 살피고 살필 따름입니다.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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