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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함부로 인가하지 마라

기자명 이제열

수행자에게 체험에 대한 인정은 독

해인사 뒤에 위치한 명상원
자칭도인, 일주일만에 ‘인가'
체험은 일시적, 신뢰는 금물

1990년대 후반 여름이었다. 가야산 해인사 뒤편에 위치한 모 명상단체를 몇몇 지인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며칠만 수련하면 깨달음을 얻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소문을 들었고, 내게 불교공부를 한 불자가 그곳에서 수행체험을 했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찾아가게 됐다.

나는 명상원을 찾기 전에 인근 해인사에 먼저 들렀다. 이왕 가야산에 왔으니 부처님께 참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였다. 부처님 참배 후 해인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대중선방을 보게 되었다. 몇몇 노보살님들이 회색 법복을 입고 좌선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장군죽비를 어깨에 메고 선방을 왔다 갔다 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이 명상원에 도착한 때는 거의 해질 무렵이었다. 나는 명상원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 곳에서 수련하는 인파들 때문이었다. 깊은 산속이었음에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큰 마당과 길은 오가는 차량들로 분주하였다. 나를 안내한 지인은 “오는 사람 500명, 수련하는 사람 500명, 가는 사람 500명으로 온종일 붐빈다”며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한국불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해인사 선방풍경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 많은 명상 인구를 왜 한국불교는 수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해인사는 바로 뒤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일기도 하였다. 수행법을 대충 물었더니 직접 수련신청을 해야 알 수 있다고 대답하면서 다른 곳에서 평생해도 못 이룰 공부를 일주일 만에 끝장 내준다고 말했다.

대표자는 ○○도인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매우 소탈하고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곳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도인을 부처님이라고 확신할 만큼 존경하고 있었다. 나는 예를 갖추고 그 ○○도인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선생님께서 인가해 주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선생님은 선생님이 인가한 저 수련생들의 체험에 오류가 없다고 확신하십니까?”

○○도인은 나의 이와 같은 물음이 예상치 못했는지 순간 흠칫하더니 “직접 수련해보면 압니다. 수련해보면 내가 왜 그들을 인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고 답했다. 내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 건방진 말씀이지만 인가한 사람들을 믿지 마십시오. 인가받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체험들은 가각(假覺)이며 가무아(假無我)로 진실성이 없는 순간적인 현상입니다.” 그러자 ○○도인은 내 말이 좀 불쾌했는지 “아 법사님, 해가 지면 산 아래 내려가시기 불편할 터인데 얼른 출발하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응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을까? 하루는 그 명상원에서 ○○도인의 총애를 받았다는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 이런 소식을 전하였다. “우리 스승님은 지금 국내에 안계십니다. 인가를 받고 신뢰를 하던 측근의 몇몇 제자들이 스승님을 해외로 모셨습니다. 이제 명상원은 그분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도 그 도인은 아직 국내에 머물지 못한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 다만 기회가 된다면 그 ○○도인을 다시 한 번 만나 과거에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수행을 지도하는 분들 중에는 자신으로부터 공부한 사람이 모종의 수행체험을 하면 이를 지나치게 신뢰하거나 칭찬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누구누구가 이런 수행을 해서 이런 체험을 했다고 남들 앞에서 자랑을 한다. 참으로 이런 일이 수행을 지도하는 분에게나 지도받는 사람에게 독이 된다는 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완전의 단계에 놓여 있는 수행자에게 체험에 대한 인정은 약이 아닌 독이다.

수행에 있어 칭찬과 인정은 또 다른 아상을 만들어 마침내 그 화살이 지도한 사람에게 꽂히는 수가 있다. 구덩이 피하듯 조심해야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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