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한국불교의 WFB 참여
88. 한국불교의 WFB 참여
  • 이병두
  • 승인 2019.02.18 15:15
  • 호수 1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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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불교국가와 친선도모·유대강화

1964년 경산 스님 등 첫 참여
덕산거사 4년 뒤 부회장 피선
한국불교 세계에 알리는 계기
1968년 10월 말, 덕산 이한상이 WFB 부회장 자격으로 초청한 태국스님들과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청담 스님, 오른쪽 끝은 숭산 스님. 앞쪽 가운데 앉아 있는 두 명 중 왼쪽이 덕산거사다.
1968년 10월 말, 덕산 이한상이 WFB 부회장 자격으로 초청한 태국스님들과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청담 스님, 오른쪽 끝은 숭산 스님. 앞쪽 가운데 앉아 있는 두 명 중 왼쪽이 덕산거사다.

해방 이후 수십년 동안 한국불교는 갈등과 분쟁이 이어지면서 내부 안정을 기하기조차 어려웠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다른 나라 불교계와 교류를 통해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해외 교류를 추진했던 점은 높이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전 세계 불교도들의 연합체인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이하 WFB)’에 1960년대 초반의 어려운 상황에도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다져온 바탕 위에서 1990년 서울, 2012년 여수와 2016년 서울에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WFB는 스리랑카 불교학자 마라라세케라(G. P. Malalasekera) 박사의 발의로 1950년 5월 콜롬보에서 27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됐다. 우리나라는 1964년 11월29일부터 12월4일까지 인도 사르나트에서 개최된 제7차 대회에 총무원장 경산 스님, 조명기 동국대 총장, 이기영 동국대 교수, 덕산 이한상 불교신문 사장 등이 참가했다. 동남아 불교국가와의 친선 도모 및 유대 강화를 위해 대회 일정보다 열흘 일찍 출발해 홍콩, 태국, 미얀마 등을 경유하고 귀국 길에는 베트남, 일본 등을 순방했다.

2년 뒤인 1966년 11월 월하 스님과 덕산이 참가한 태국 방콕 제8차 대회에서는 WFB에 정식으로 가입했으며, 1967년 10월 회장 푼 피스마이 디스쿨(Poon Pismai Diskul·태국 공주)이 방한했다. 1968년 10월 방콕에서 열린 WFB 상임이사회에서 덕산이 12명으로 이루어진 부회장단에 피선되는 등 짧은 기간에 WFB에서 위상을 확보했다.

이 사진은 덕산이 WFB 부회장이 된 뒤 그 자격으로 태국스님들을 초청했을 때(1968년 10월 말~11월 초 추정) 청담, 숭산 스님 등과 함께 한 모습이다. 앞줄에 앉아 있는 여성들이 누구였는지 궁금하고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는 나이 든 여성의 표정도 이채롭다.

한국불교는 그 뒤로 WFB에 적극 참여해 1970년 10월에는 WFB 창설의 주역으로 8년 동안 회장을 역임한 마라라세케라 박사를 초청해 삼보법회에서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이 상처를 입으면 전신이 영향을 받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일부분이 전쟁과 기아로 고통을 받으면 이것은 곧 전 세계의 문제. …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전쟁과 기아를 몰아내는 데에 힘써야 한다”는 내용의 기념강연을 가졌다.

이런 바탕 위에서 1990년, 2012년과 2016년에 WFB대회를 국내에서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두 대회는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개최했으므로 어려움이 없었지만, 1960년대 초반부터 힘들게 시작해 WFB에 적극 참여하며 한국불교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애써온 덕산의 공은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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