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6.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이숙희
  • 승인 2019.02.18 17:24
  • 호수 1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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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대좌 모두 철로 주조한 유일 사례
신라불교 대중화되는 신앙형태 반영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상, 865년, 높이 103.5㎝.

강원도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는 865년(신라 경문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부처에게 예배하고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성불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 ‘피안에 이르는 절’이라는 이름 자체가 불교적이면서도 상당히 매혹적이다. 

1898년에 화재로 불탄 후 중건된 도피안사는 한국전쟁 때 다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철조비로자나불상만 땅 속에 묻힌 채 화재를 면하였다. 땅 속에 묻힌 불상은 1959년 봄 육군 제15사단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당시 제15사단장이었던 이명재 장군은 사흘 밤 동안 꿈을 꾸었는데, 도피안사 부처가 나타나 땅속에 묻혀 답답하다고 하였다. 이튿날 장군은 전방 순찰을 나갔다가 갑자기 갈증을 느껴 민가에 들렀는데, 집주인의 모습이 꿈속에서 만난 불상과 너무나 흡사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이장군은 집주인과 함께 폐허가 된 절터로 찾아 갔는데, 놀랍게도 절터 바닥에는 불상의 육계가 땅 위에 솟아 있었다. 여러 장병들이 불상을 끌어 올리려고 있으나 불상은 꿈적하지도 않았다. 결국 장군이 불상의 얼굴을 정갈하게 씻은 뒤 자신의 군복을 벗어 입혔더니 그제야 불상이 땅 위로 올라왔다. 이에 장군은 그 절터에 도피안사를 중건하고 철조비로자나불상을 다시 모셨다고 한다. 도피안사는 오랫동안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어 군에서 관리하였으나 1985년에 사찰관리권이 민간으로 이관되어 지금은 누구나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상 명문.

도피안사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은 광배가 없어진 상태이지만 불신과 대좌 모두 철로 주조된 유일한 예이다. 불상의 등 뒤에는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세상이 어둡게 되고 삼천광(三千光)이 비치지 않는 것을 슬퍼하여 865년 1월에 향도 1500여명이 발원하여 이 불상을 조성하였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불상의 어깨, 가슴 등에서 전체적으로 양감이 줄어들어 밋밋한 편이다. 상체에 비해 결가부좌한 다리가 넓고 높은 편이어서 안정감이 있다. 머리 위의 육계는 뚜렷하지 않고 넓게 퍼져 있다. 갸름한 얼굴에는 반쯤 뜬 눈과 콧등이 편평한 코, 도톰하면서 얇은 입술 등이 표현되어 있어 순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의 법의를 입었는데 옷깃은 밋밋한 가슴이 많이 드러나게 여미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옷자락이 가슴 쪽으로 약간 접혀 들어가 있고, 옷주름은 일정한 간격으로 내려와 형식화된 모습이다. 두 손은 몸에 비해 작은 편으로 가슴 앞에서 지권인을 취하고 있다.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상은 859년의 보림사 비로자나불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지만 얼굴이나 옷주름 표현 등이 다르며,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역에서 조성된 같은 시기의 9세기 후반 비로자나불상과도 전혀 다른 계통의 불상형식을 보여준다. 이전에 비해 인간적인 얼굴과 밋밋한 신체, 형식적인 옷주름 등으로 변화되는 불상의 모습은 신라 불교가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대중화되는 신앙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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