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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싯닷타의 출가와 ‘샤콘느’

기자명 김준희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 슬픔 대변하는 선율

타마소 비탈리의 독주곡 샤콘느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애칭
출가로 인한 아픔 표현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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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범하고 강렬한 바흐의 샤콘느
출가 순간의 비장한 각오 연상
새로운 탄생 위한 고통 비춰져

싯닷타 태자의 출가. 간다라, 기원전 2세기,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소장.

흔히 부처님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 한다. 위대한 포기에는, 내려놓기 어려운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와 더 큰 성취를 위한 포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붓다는 29세의 나이에 첫 아들 라훌라를 보게 되었고, 라훌라가 탄생한 바로 그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아내 야소다라에 대한 연민, 그리고 부왕 숫도다나와 온갖 사랑으로 자신을 키워준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파자파티에 대한 사랑을 뒤로 한 채, 출가의 위대한 발길을 내딛는다.

남겨진 야소다라와 숫도다나, 그리고 마하파자파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실 이들은 처한 입장은 각각 다르지만, 태자 싯닷타를 한결같이 바라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에게 태자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고, 삶의 의미와도 같았다. 어느 날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출가의 삶을 선택한 싯닷타는 이들에게 한순간에 예상할 수 없는 ‘이별’을 안겨주었다. 그 ‘이별’이 가져다 준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타마소 비탈리의 바이올린 독주곡 ‘샤콘느(Chaconne)’의 전반에는 슬픔의 정서가 담겨있다. 샤콘느는 원래 바로크 시대 스페인에 기원을 둔 3박자의 춤곡이 변주곡 형태로 발전된 것이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기본이 되는 통주저음(basso continuo, 특수한 연주 관습에 의해 반복되는 저음으로 숫자로 표기되며 즉흥연주가 가능하다)을 기본으로 화려한 음형들이 펼쳐진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특히 일정한 화음 안에서 점점 고조되는 선율들로 마음 속을 긁는 듯한 어떤 슬픔, 또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싯닷타의 출가 뒤에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애칭을 가진 이 샤콘느에 빗대어 보면 어떨까. 낭만주의 문학가 바켄로더는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초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상에서 쓰이는 일반적인 언어 이상의 언어로 표현되는 예술”이라고 했다. 시종일관 흐르고 있는 감성과 호소력은 마치 가슴을 에는 슬픔과 고통에 직면한 야소다라와 숫도다나 그리고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한 모든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의 언어로 대변해주는 것 같다. 

타마소 비탈리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로 알려졌지만 작품의 숫자가 적고 사료가 부족하여 정확한 생몰연대를 추측하기 어렵다. 특히나 이 샤콘느는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18세기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과감한 조성변화와 격정적인 낭만주의적 정서를 담고 있어 많은 학자들이 진위여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바흐 샤콘느 자필악보 Chaconne-Manuscript.

하지만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바이올린 문헌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보석과 같은 곡임에는 틀림없다. 종결되는 듯하다가 다시 새로운 선율로 시작하는 부분들은 차마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의 눈물, 온힘을 다해 맨손으로 벽을 긁으며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 같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 이별의 순간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싯닷타에게는 또 하나의 ‘탄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붓다의 일생은 탄생, 출가, 깨달음, 열반 이렇게 네 가지의 큰 사건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출가는 일생 중 가장 큰 사건으로, 소위 말하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깨달음의 순간은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탄생이다. 빅뱅과 같이 한 순간에 폭발하는 것처럼 새로운 정신적인 자각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열반은 앞의 세 가지 탄생에 대한 완성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탄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간 한 걸음 한 걸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바로 출가의 여정이다. 붓다는 출가의 길에 수반되는 아픔과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함과 동시에, 버려진 넝마조각을 걸치고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로 발길을 옮긴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2번, BWV1004의 마지막 악장 역시 샤콘느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파르티타와 소나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완성도가 높은 악장으로 많은 경우에 단독으로 연주된다. ‘영원으로의 끝없는 비상’이라는 애칭을 가진 이 곡은 비탈리의 샤콘느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공감을 받기도 하였다. 

세상이라는 넓은 무대로 출가를 감행하는 싯닷타와 좁은 무대를 뛰쳐나와 가난과 병으로 지친 고독하고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는 바이올린 플레이어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며 샤콘느를 감상해보자. 비탈리의 샤콘느는 슬픔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직접적이고 애절하게 풀어낸다면, 바흐의 샤콘느는 조금 더 대범하고 비장한 각오 속에 절제된 모습으로 승화시킨다. 낭만시대 작곡가 페루치오 부조니는 이 강렬하고 비극적인 샤콘느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하여 그 웅장함을 재창조했다.

바흐의 샤콘느를 부조니의 편곡으로 들으면 출가의 순간을 맞이한 싯닷타의 단호함이 더욱더 뚜렷이 전해진다. 피아노의 넓은 음역으로 풍부한 울림과 꽉 찬 화성으로 장엄함을 보여주는 이 편곡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오르간의 음색부터 바이올린의 섬세한 현의 떨림까지 오케스트라의 넓고 장대한 색채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바이올린 작품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기교를 담은 패시지, 반복음의 잦은 사용, 스타카토와 레가토를 동시에 연주하는 주법 등 다양한 테크닉을 담고 있다. 

음악은 감정의 예술이다. 작곡가는 작품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고, 연주가는 연주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청중은 본인의 감정을 통해 그 작품을 감상하며 작곡가와 연주가가 의도하는 감정을 받아들인다. 싯닷타의 출가를 두 가지 측면, ‘이별의 아픔’과 ‘새로운 탄생을 위한 고통의 감내’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샤콘느를 감상해보자.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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