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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토록 괴로운데 가해자는 사과 한마디 없다니…”

  • 교계
  • 입력 2019.02.21 10:27
  • 수정 2019.02.21 16:07
  • 호수 1478
  • 댓글 18

선학원 이사장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
“살아도 사는 것 아니었다”고통 토로
대법원 판결 후에도 변함없는 가해자
“이제 숨지 않겠다”…언론에 ‘호소문’

윤소연(가명)씨가 지난 2년간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의 성폭력 피해자 윤소연(가명)씨.

“아직도 꿈을 꿉니다. 꿈 속에서 저는 항상 도망가고, 소리치고, 두려움에 떨어요. 지난 2년간 피해자인 제 삶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는데, 왜 가해자인 법진 스님은 사과나 참회 한마디 없이, 그 행동에 대한 징계조차 받지 않고 잘 살고 있나요?”

윤소연(가명)씨 얼굴에 슬픔과 분노가 함께 묻어났다. 그녀는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의 성폭력 피해자다. 2016년 말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을 직장 내 성폭력으로 고소한 뒤 2년 4개월간의 재판 끝에 성폭력 피해자임을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법보신문과의 첫 만남은 약 2년 전. 법진 스님을 고소한 후 도움을 요청해 왔었다. 그때보다 야위고 초췌했지만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몸을 움츠리던 모습은 다소 나아졌다. 성폭력 피해여성 쉼터에 머물며 받은 외상 후 장애(트라우마) 치료프로그램 덕분이라고 했다.

그녀는 “피해자인 나는 이토록 송두리째 삶이 무너졌는데 가해자는 아무런 변화 없이 잘살고 있다는 것은 비정상”이라며 “지난 2년간 희망과 절망을 수없이 오갔고 이제는 두려움을 넘어 분노마저 느낀다”고 했다.

고소 후 경찰 조사에서부터 그녀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은 법진 스님의 진정성 있는 사과, 그리고 종교인이자 종교재단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바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법진 스님에게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이후에도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 이후, 선학원 이사회가 법진 스님의 사표를 반려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충격으로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제가 받은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어요. 저와 함께 근무했던 재단 직원들이 법정에 나와 법진 스님의 편에 서서 제가 납득할 수 없는 행실을 문제 삼고 과거 직장까지 헤집으며 저를 소위 ‘꽃뱀’으로 몰아가려 했지요. 그러나 1심과 항소심, 대법원에서까지 이는 2차 가해이며, 제가 명백한 성폭력 피해자고 법진 스님이 가해자라고 판결했어요.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네요. 저는 여전히 사과조차 받지 못했고 제 삶을 버린 채 숨어 지내고 있죠.”

한숨이 깊었다. 독실한 불자로 선학원에 처음 입사했을 때 느꼈던 기쁨과 자부심을 생각하면 지금 이 상황이 차라리 꿈 같다. 금강경 사경 기도를 한 덕분에 입사할 수 있었다고 믿을 정도로 자랑스럽고 간절했던 직장 선학원이다. 스님으로서, 또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한때나마 법진 스님을 존경했었기에 지금 느끼는 분노도 더 크다.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금강경 사경을 했다. 그렇게 2년 간 써내려간 사경집이 23권이다.

그녀는 “2016년 8월 법진 스님이 저를 강원도 속초로 데리고 갔던 문제의 그날. 바로 고소하지 않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직장이 너무 간절했고 또 스님에 대한 두려움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불자로서 고민도 있었다”며 “그런데 지금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그 어떤 참회도 없고, 재단 차원에서 징계 논의도 되지 않은 채 공식 석상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고 했다.

소연씨가 호소문을 작성하기 전 마음을 다잡으며 작성했다는 메모.
소연씨가 호소문을 작성하기 전 마음을 다잡으며 작성했다는 메모.

2월20일 처음으로 실명을 드러낸 채 ‘호소문’을 작성해 언론에 발송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호소문에서 윤씨는 “연일 보도되는 미투를 보며 이제 더 이상 숨어만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사실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995년 법진 스님에게 저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피해자와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분은 제 손을 잡고 그때 자신이 바로잡았다면 소연씨같은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울먹이셨어요. 제가 포기할 수 없도록 마음을 다잡아주는 말이었습니다.”

윤씨는 “잃어버린 제 삶을 되찾기 위해, 종교법인의 이사장이 여직원을 성추행하고도 건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용기있는 미투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우리사회의 여성피해자들을 위해” 며칠 밤을 고민해 호소문에 진심을 담았다.

이후 윤씨에게는 이메일을 통해 각 언론사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데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적지 않지만, 그녀는 “이제 더이상 움츠러들지 않겠다”고 했다.

“법진 스님에게 출가자로서 해선 안 될 행동을 한 것에 대한 사과와 참회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퇴든 징계든, 스님이자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부적절한 본인의 행동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쉼터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언젠가는 쉼터가 제공하던 안전과 치료프로그램을 벗어나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판결 후에도 변함없는 선학원은 그녀에게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그래도 돌아가겠다”고 했다.

“내 삶이 멈춘 곳이자 한때는 더없이 자랑스러웠던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다시 돌아가, 잃었던 내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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