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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는 불교적인가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2.25 10:27
  • 수정 2019.02.27 10:27
  • 호수 1478
  • 댓글 34

윤회 두고 견해 차이 확연
불경엔 두 해석 여지 충분
현대적인 불교윤회관 필요

중국 충칭 세계문화유산 대족석각의 육도윤회도.
중국 충칭 세계문화유산 대족석각의 육도윤회도.

이달 초 출간된 ‘일묵 스님이 들려주는 초기불교 윤회 이야기’가 서점가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대형서점에서 불교분야의 상위권에 링크돼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윤회 문제를 초기경전에 근거해 세계의 구조, 업과 윤회의 관계, 죽음 직전의 모습과 재생연결, 윤회의 원리와 구조, 무아인데 윤회하는 이유 등을 쉽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윤회는 다음 세상에 좋은 곳에 태어났으면 하는 불자들에게도 그렇지만 불교학을 전공한 학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본질이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불교의 무아론이기에 윤회하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두고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논쟁과 해석이 끊이질 않는다.

초기불교 수행법을 전하는 제따와나선원장 일묵 스님은 책 서두에서 “윤회를 믿지 않는 불자가 의외로 많다. 심지어 윤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까지 말하는 불교학자나 스님들도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불교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릇된 견해에 빠지는 것이다. 반면에 윤회를 이해하는 것은 불교를 아는 것이고 바른 견해를 갖춘 것이다”라며 윤회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다.

일묵 스님이 언급하듯 불교계에서 윤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흐름은 꽤 일찍부터 있어왔다. 그 배경에는 윤회가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함께 불교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분석이 이뤄진 영향이 적지 않다. 세계적인 불교학자였던 고 히라카와 아키라(1915~2002) 박사는 “석존의 불교는 윤회사상을 인정해야만 하는 종교는 아니었다. 물론 윤회사상과 모순되는 것은 없었다.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이라는 것은, 생존이 윤회적이라면 그 윤회의 생존으로부터 해탈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윤회사상을 적극적으로 배격할 필요는 없었다”며 윤회가 불교의 핵심 사상이 아님을 시사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윤회론은 인도 고유의 사상이 아니라 기원전 7세기를 전후해 본격화된 비(非)바라문적인 문화의 소산이다. 그런 윤회론이 인도문화에서 주류로 정착된 것은 철저한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를 윤회론이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서다.

초기불교의 윤회사상을 잘 드러나는 ‘자타카’에서 붓다의 본생으로 제시된 547생들 간에는 전생과 후생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불교의 윤회론 목적이 보살행의 강조와 연관됐다는 분석이 있다. 정암 스님은 ‘문학 사학 철학’(통권 9호, 2007년)에서 “전생과 후생의 유기적 연관관계가 없는 윤회론이라면 그 윤회론적 의미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관해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며 “이것은 붓다에게 있어서 수용된 윤회론이 인도문화에 있어서의 특수성을 고려한 방편이 아니었는가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윤회론에 있어서 전생과 후생의 유기적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은 윤회론의 실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상통되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윤회론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학자는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다. 그는 2008년 ‘윤회와 반윤회-그대는 힌두교도인가, 불교도인가?’라는 저술을 통해 ‘윤회는 신분차별을 공고히 하는 힌두교 것이고 불교는 이를 비판하고 극복한 것이므로 반윤회’라고 말한다. 힌두교는 전생의 내가 현생의 나를 규정하고 현생의 내가 다음생의 나를 규정한다고 하여 생을 거듭하는 나의 동일성[有我]을 주장하므로, 불교에서처럼 나라는 것을 부정하면 윤회의 근본이 무너진다. 이것이 곧 윤회의 근본인 자아를 부정한 무아의 깨달음, 즉 붓다의 깨달음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재형 국장

팔만대장경에는 윤회론을 옹호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내용과 해석의 여지가 많다. 그렇기에 윤회를 부정하면 불자가 아니라거나 반대로 윤회를 인정하면 힌두교도라는 주장은 과격하다. 그 같은 주장이 한쪽으로 쏠릴 경우 불교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문화적 측면을 크게 상실할 수 있다. 오히려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불교의 핵심사상에 부합하면서도 비불자도 긍정할 수 있는 현대적인 윤회사상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다.

mitra@beopbo.com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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