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길
28. 길
  • 임연숙
  • 승인 2019.02.25 16:48
  • 호수 14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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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삶 속 거짓없는 풍경을 전한다

작은 여백조차 없는 작품에는
상점 간판·바쁜 사람들로 가득
시대를 기록한 진정한 풍경화
이김천, 길, 장지에 아크릴, 450X210cm, 2011.
이김천, 길, 장지에 아크릴, 450X210cm, 2011.

해가 바뀌고 설과 입춘, 대보름까지 년 초 주요 기념일들을 지내고 나니 벌써 삼월이 목전이다. 본격적인 2019년 한 해가 시작되는 듯하고, 뭔가 주변을 정리하고 환기시켜 새 기운을 받아야만 할 것 같다.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어떤 현상, 혹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해가 바뀌어 한 해를 구상하면서도 그렇고, 주변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면 나부터도 부정적인 생각 투성이다. 

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한 안 좋은 상상과 걱정을 번뇌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이런 번뇌로 몸과 마음이 힘들다. 이럴 때 이성적인 생각이나 논리적인 전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그저 어떤 것에 몰입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듯싶다. 작가들이 우직하게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도 많은 생각이나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그저 바라본 형상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시각화해가는 집중력 때문일 것이다. 

보이는 현상을 그저 무심하게 화면 전체에 빼곡하게 채워 여백의 미라곤 찾아 볼 수 없다. 기존의 풍경화, 산수화의 개념을 깨는 이 그림은 작가가 그리는 일에 집중함으로서 결과물에 대한 어떤 부정적 의심과 포기를 넘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 냈다. 구도를 잡고 여백을 남기고 조형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그림의 전체는 간판으로 뒤 힌 건물과 사람들로 꽉 차있다. 아름답게 보이도록 어떤 장치를 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다. 광고물속에서 도대체 어떤 광고를 봐야할지, 광고효과는 거의 없는 텍스트 범벅이다.  

인도에는 바쁜 사람들로 꽉 차있다. 가만히 서있는, 혹은 앉아있는 정적인 인물은 없다. 다들 움직임이 있는 모습이다. 걷거나 뛰거나 달리거나 전화를 받거나 바글바글 바쁘다. 기존의 산수가 이상향을 찾아서, 또 이상향의 대부분은 호젓한 인적 드문 산세가 수려한 자연이었다면, 이 작품은 정반대의 풍경이다. 인산인해인 거리와 세속적인 우리 삶의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는 업체와 매장으로 꽉 찬 상가건물이 주인공이다. 반면에 도로에 차는 많지 않다. 수많은 꽃과 풀, 원시림이 길에 펼쳐져있다. 잔잔한 꽃, 이파리, 풀 등이 이 또한 여백 없이 꽉 채워져 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생활 속의 기록이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이 아름답게 전해진다. 

2011년도 제작된 작품답게 메가웨딩, 로하스, 아메리칸호프, 킹스어학원, 메가짐, 스마일 한의원, 플러스 안과, 남원추어탕 등등. 읽어 볼수록 재미있는 이름들이다. 세련되고 유명한 메이커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알만한 이름으로는 미스터피자 정도다. 대기업 전자대리점이나 요즘 건물마다 꼭 들어가는 통신사 매장은 이때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았나보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퇴근 시간 풍경이라는 것은 오른쪽 구석 하늘이 있는 여백에 그려진 작은 달이 알려준다. 동네를 유추해 보면 아주 도심의 풍경은 아닌 듯싶다. 생활 매장이 많은 것으로 봐서 큰 아파트 단지 주변이 아닐까. 그렇다고 아주 세련된 고층아파트 단지라기보다는 유동인구가 많은 중소도시의 어느 귀퉁이.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모습이다.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보다보면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어떤 특정 오브제에 작가의 특별한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한번은 작가에게 구석에 그려진 이 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불가마 사우나나 메가 웨딩의 텍스트에 어떤 풍자나 숨은 뜻이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을 물어본 적이 있다. 작가의 대답은 그런 질문이 많은데,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일부러 어떤 이미지를 숨겨놓을까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긴 그런 복잡한 생각은 작가 이김천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 대로 보이는 대로 그리고 싶은 것을 있는 그대로 쓱쓱 그려나가는 것이 작가와 어울린다. 그리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여 삶이 녹아 있는 풍경을 전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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