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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1975년 조계종 호국승군단 발단

기자명 이병두

한국불교, 정권에 다시 예속되다

민족주의에 무릎꿇은 베트남전
반공 분위기 권력 유지에 활용
불교계도 수륙재 등 적극 동참

1975년 12월17일 열린 ‘호국승군단’ 발단식.
1975년 12월17일 열린 ‘호국승군단’ 발단식.

1975년 5월1일,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현 호치민)시에 들어온 북베트남군이 승전 선언을 하면서 수십년 간 치열한 전투를 이어온 남·북 베트남 사이의 전쟁이 끝났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반공산주의 진영의 맹주를 자처하던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막강 화력이 강한 민족주의 의식으로 무장한 북베트남군과 남부 게릴라(베트콩)들의 끈질긴 저항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유신 독재체제를 영원히 이어가려던 박정희의 계획이 초반부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이른바 ‘긴급조치’를 연달아 내놓아 온 나라를 공포에 몰아넣어도 대학생을 비롯한 전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었던 박정권에게는 이것이 ‘기사회생’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전국의 대학과 중‧고등학교의 학생회를 해산하고 학도호국단 체제로 바꾸었지만 이에 대해 저항할 수 없었고 전국에서 반공 궐기대회가 이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교계도 이 상황을 피하기 어려웠다. 5월5일에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의 전신인 한국불교협의회에서 ‘호국결의문’을 채택하고, 7월14일에는 태고종이 서울 뚝섬에서 ‘총화안보기원 영산수륙대법회’를 개최했으며, 조계종도 7월26일 전국적으로 ‘호국사상강연회’를 열고 8월1일에는 ‘호국승군단’ 헌장과 종령을 공포했다.

이때에도 조계종은 혼란을 이어갔다. 종정 서옹 스님과 갈등을 빚던 총무원장 경산 스님이 9월26일 사직하고 10월6일에 서암 스님이 그 뒤를 이어 취임했으나 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사임한 뒤 12월5일 영암스님이 새 원장으로 취임해 종단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된 12월17일 ‘호국승군단’ 발단식을 개최했다. 이 사진에서 보이듯이, ‘호국불교 재현해 총화단결 이룩하자!’ ‘호국승군 있는 곳에 승공통일 이룩된다’는 현수막을 내건 발단식에는 비구니를 포함해 노소(老少)를 가리지 않고 많은 스님들이 동원되었다.

당시 청와대를 예방한 총무원 총무부장 고산 스님이 ‘나라를 위해 스님들이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자 박대통령이 “불교종단에서 호국승군단을 만드세요. 그리하여 자체적으로 훈련을 하고 일 년에 한두 차례 사단장과 지휘관을 보내서 지도 점검케 할 터이니 그리 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감격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 전국 사암에 공문을 보내고 … ‘20세 이상 70세 이하 승려는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참석하기 바란다. 특별한 사유 없이 불참한 이는 승적 박탈 또는 중벌을 면치 못한다’는 말도 공지했다. 그랬더니 중병으로 신음하는 이를 제하고는 모두 참석했다”고 회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승군단 출범은 정권의 강요이기보다는 ‘사회 분위기를 좇아가는 자발적 선택’ ‘정권에 잘 보이려는 적극적 행위’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렇게 해서 불교에 슬픈 역사가 다시 이어졌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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