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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찬디 세우(Candi Sewu)

사일렌드라 왕가가 세운 불교건축예술 걸작

‘라카이 파낭카란’ 왕이 집권 후
대승불교 국교 선포·사원 건축
자바섬 전역에 종교·문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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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디 세우 건축은 최고의 업적
크고 작은 천개 사원으로 구성
식민지·지진 파손 후 복구 중

인도네시아의 찬디 세우 사원은 자바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장소로 손꼽히고 있으며, 사원은 중앙 건물(위)을 중심으로 만다라 형태(아래)로 세워져 있다.

사일렌드라(The Shalendras) 왕조가 현재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을 지배하고 있을 때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스투파인 보로부두르(Borobudur)가 세워졌다. 이 사일렌드라 왕조 시절 꽃피웠던 문명은 오늘날까지 대부분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다. 역사가들은 북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746~830년 당시 ‘야바드비파(Yavadvipa)’라고 불리던 현재의 자바섬에 정착해 사일렌드라 왕조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 왕조의 이름인 ‘사일렌드라’는 ‘산을 지키는 신’을 의미한다. 사일렌드라 왕가 최초의 왕은 마하라자 라카이 파낭카란(Maharaja Rakai Panangkaran, 746~780)이었는데 집권 후 힌두 왕국이었던 산자야(Sanjaya) 왕가를 점령하고 여러 지역에 대승 불교를 전파했다. 그는 곧 대승불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불교 사원 건축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보로부두르 지역의 찬디 세우(Candi Sewu)와 타라보살을 위해 지어진 찬디 칼아산(Candi Kalasan) 사원 모두가 이 시기에 완성된 불교 건축 예술의 걸작품들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고 난 후 사일렌드라 왕조는 자바섬 전역에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사일렌드라 왕국이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면서 부족 간의 결혼도 다양해졌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불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한편 사일렌드라 왕국은 자바섬 밖까지 영향력을 펼쳐나갔는데 캄푸자(Kampuja) 왕국(현재 캄보디아)이나 참파(Champa) 왕국 (현재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동남아시아에서 불교문화를 전파하는 데 그 어느 왕조보다도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지녔던 사일렌드라 왕조 시대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꼽으라면 이는 단연코 찬디 세우 사원 건설일 것이다. 찬디 세우 사원은 왕실 가족들을 위해 세워진 불교 사원으로서 현재까지도 고대 자바섬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장소로 손꼽히고 있다. 1960년 발견된 자료를 바탕으로 이 사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찬디 세우 사원은 만쥬스리 그리하(Manjusri Griha·문수보살)를 모시기 위해 지어졌다. 그래서 이름도 ‘만쥬스리 그리하 사원’이다. 문수보살은 지혜와 제불(諸佛)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만쥬스리’라는 단어는 ‘온화한 영광’을 의미한다.

찬디 세우 사원은 사일렌드라 왕조 제1대 왕이었던 라카이 파낭카란이 임기를 마치기 직전에 세운 사원이다. 힌두교 신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프란바난(Prambanan) 힌두 사원에서 1km 거리에 위치한 곳에 찬디 세우 사원을 설립한 이유는 불자들과 힌두교 신자들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는 염원을 담은 데서 기인했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는 4곳인데 이는 동서남북 각기 하나씩 4개의 서로 다른 입구를 가진 구조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천(千)을 의미하는 ‘세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찬디 세우 사원 내에는 셀 수 없는 많은 사원이 세워져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무려 257개의 건물들이 정 중앙 건물을 중심으로 만다라 형태로 세워져 있다. 다시 248개의 작은 사원 건물들은 직사각형 구조로 배열돼 있음을 볼 수 있다. 각각의 건물들은 정확한 간격을 두고 지어졌으며 그 안에는 다시 176개의 작은 사원들이 세워져 있다. 가장 가운데 건물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도 대칭적인 구조로 지어진 찬디 세우 사원을 구성하는 수많은 건물들의 중간에는 가장 중요한 사원이 위치하고 있다. 각 지붕 위에는 뛰어난 기교로 만들어진 수투파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메인 사원의 동서남북에는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층계가 마련되어 있으며 찬디 세우 사원의 전체적 구조와 마찬가지로 메인 사원에도 4개의 입구가 존재한다. 사원은 안산암(安山巖)으로 건축됐으며 지붕은 어느 다른 건물보다도 높이 세워져 있다. 가장 중앙에 위치한 방에는 연꽃이 조각된 돌 받침대가 그 정교함을 뽐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 방에는 무려 4m에 달하는 불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1825~1830년 자바섬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침략자를 막기 위한 요새 건설을 위해 찬디 세우 사원 건물의 돌들을 빼갔다. 점점 더 많은 돌이 제거되면서 대부분 건물들이 형태를 잃고 무너져갔으며 사원 여기저기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또한 자바섬이 식민지 전쟁을 통해 네덜란드에 의해 점령되면서 이곳을 찾은 네덜란드 정복자들은 찬디 세우 사원 내 모셔졌던 수많은 불상의 머리 부분을 장식했던 보석들을 빼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웠다. 통제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다 보니 앤틱 수집가들과 개인 박물관 소유자들까지 이곳에 와서 수많은 조각상들을 빼돌렸다. 

20세기 초반이 되면서 찬디 세우 사원의 보존과 복구에 대한 관심이 일며 서서히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었다. 자바섬의 풍요로운 불교 문화를 잘 보여주었던 소중한 문화재 찬디 세우를 최대한 이전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각국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도착해 힘을 모아 복구 사업을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006년 자바섬에 커다란 지진이 발생하며 다시 찬디 세우 사원의 복구 사업은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다시 시작된 복구 사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찬디 세우 사원은 최근에 다시 방문객들의 입장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전문가와 고고학자들은 ‘천 개의 사원’ 찬디 세우가 그 예전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복구 작업에는 무려 200여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복구 작업이 큰 사고 없이 잘 이루어지길 또 자바섬에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여행 정보

· 가는 법 -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까지 간 후 족자카르타 행 국내선으로 갈아탄다. 족자카르타에서 버스로 30분가량 달리면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 유적지에 도착한다. 찬디 세우는 프람바난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1.8km)에 위치해있기에 택시나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 비자 - 한국인 여권 소지자의 경우 관광을 위해 비자 없이 30일간 머물 수 있다. 
· 통화 - 인도네시아 루피아(IDR) 사용
· 전압 - 한국과 같은 220V. 별도의 어댑터 없이 사용가능하다.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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