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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출가와 브라만-하

기자명 현진 스님

불교서 ‘사문’은 고생 마다하지 않는 수행자 의미

인도서 신흥종교 불교 출현
브라만교 출가문화를 바꿔
탁발은 수행자 하심 기르고
세간과 거리 좁히는 순기능

브라만 계급으로 태어나 학생기에 스승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가주기에 결혼하여 한 가문과 그 지역을 잘 이끌고는, 아들이 가주기에 정착할 즈음에 그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빈손으로 숲에 들어가서 가져다주는 공양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는 임주기(林住期)는 브라만교도의 입장에선 완벽한 출가(出家)이자 한 생을 열심히 산 덕분으로 받는 보상이다. 이때가 브라만이 수행을 통해 브라흐만과 합일을 이뤄 해탈에 가닿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을 땐 이미 그러한 전래의 틀이 깨어지고 있었다. 브라만 계급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출가는 사성계급 모두는 물론 심지어 계급 밖의 사람들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며, 또한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학생기와 가주기를 완수한 이에게 주어지는 듯했던 임주기인 출가는 어느 때건 어떤 신분에서건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 사람은 브라만도 아니면서 저리 어린 나이에 숲에서 왜 저러고 앉았데? 제 분수도 모르고 건방지지 않나? 그런데 우리가 굳이 공양을 가져다 바쳐야 될 필요가 있나? 그냥 내버려둬!’

당시의 새로운 흐름에 적극 동조하는 진보성향이 아니라 보수파에 속하는 인도인이라면 분명 이런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흥종교들이 전래의 틀을 깨버리고 양성해낸 수많은 수행자들은 이전의 출가자들에 비해 사회적인 대접이 형편없었다.

그런 수행자들을 싀라마나(śramaṇa)라고 일컫는데, 고생하다는 의미의 동사 ‘√śram’에서 온 말이다. 그 말의 소리옮김이 ‘사문’이요, 의미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브라만의 출가를 하신 것이 아니라 머리를 깎은 사문으로 출가를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문으로 숲에서 수행만하고 앉아있으면 하루 한 끼의 공양해결이 어렵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백성들이야 자기 입에 풀칠도 녹녹치 않은데 정당성도 결여된 듯한 이에게 자기 먹거리의 한 몫을 쉽게 떼어내어 가져다주기까지 하려고하겠는가? 그래서 수행하는 숲을 벗어나 저잣거리로 탁발을 나오게 되었으며, 그러다 한 숲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곳으로 유행(遊行)하며 탁발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엔 어느 정도의 임주기를 거쳤으면 만행하는 유행기를 갖는 관습으로 브라만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불교는 분명 생뚱맞게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불교 이전의 인도사상과 수행전통을 인(因)과 연(緣)으로 하여 그것들이 수정되고 보완된 것에 부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더해져 자리 잡은 것이다.

왕자의 안락함을 내려놓은 채 고생을 마다않는 사문으로 출가하신 부처님께서 승단을 이룬 후에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을 비구(bhikṣu)라고 일컬으셨다. 비구는 구걸하다는 의미의 동사 ‘√bhikṣ’에서 온 말로서 ‘구걸하는 이’라는 뜻이다. 이전의 수행자들에 비해 사문이 지니는 특이점들, 앉아서 공양을 받는 자가 아니라 나아가 탁발을 하며 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고 만행하는 수행자라는 등의 몇몇 특이점 가운데 탁발이 특히 강조된 일컬음이 ‘비구’이다. 탁발은 수행자가 지녀야 될 하심(下心)을 길러주고, 숲에만 있을 경우 발생하는 세간과의 괴리를 어느 정도 없애주는 순기능도 갖추고 있다.

‘비구’를 한문으로 옮긴 말이 걸사(乞士)이다. 구걸하는 선비란 뜻인데, ‘bhikṣu’의 의미를 그대로 옮긴 것에 선비[士]란 말을 덧붙임으로써 출가승려가 지녀야할 기본자세를 적절히 갖추고 있다. 지금의 수행자들은 그 가운데 무엇이 결핍되고 무엇이 과잉되어 있는지, 꼭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수행자도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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