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맹자도 순자도 없다

기자명 고용석

문화에 담긴 정신은 음식 통해 전달

‘네가 원하는 바를 베풀라’는
모든 영적 전통의 윤리 근간
악도 사실 문화·관습 인한 것
오늘날엔 맹자도 순자도 없어

사람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인성을 관찰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은 오랜 철학적 논쟁일 뿐 아니라 그 방식에 따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등 시스템의 본질적 토대와 그 운영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먼저 인간은 고정된 게 아니라 삶을 통해 잠재력을 펼쳐가는 존재임을 인정하자. 그리고 성선설(性善說) 성악설(性惡說)의 선악은 동일 차원이 아니라 인간 잠재력의 서로 다른 차원의 의식수준으로 이해하자. 선악이 뒤섞여 있어 위태로운 차원을 ‘악’이라 하고 ‘선’은 선악이 뒤섞인 차원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본래적 선함을 말한다. 이 차원은 마치 물과 물결이 다르지 않듯 궁극으로 선악을 초월하고 포옹하는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이건 단순히 양자선택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자의 두 제자라 할 수 있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반영한다. 순자는 사람이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에게 이익 되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이 선천적이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그대로의 본성이라 한다. 여기서 출발해 후천적 노력과 단련을 통해 인의예지를 얻는 것이라 본다. 그는 인의예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순자의 시각은 모든 인간은 사회성을 결여한 이기적인 존재이고 자연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생각하고 사회계약설을 주창한 홉스와 유사하고 복종실험으로 대단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스탠리 밀그램 교수와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이 시각은 오늘날 국제정치와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설득력 있게 기여해왔다. 

순자의 시각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쉽게 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음을 상기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히틀러 등 역사적 현장에서 왜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명령에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지, 왜 평범한 사람들이 끔찍한 대량학살을 저지르는지를 설명한다. 이것에 초점을 맞추면 무엇보다 인간성이 최악으로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상황을 제한하는 법과 제도, 그에 따른 교육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반면 맹자는 모든 존재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선함이 있으니 헛된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본심으로 돌아가라 한다. 우물가에 있는 아기를 보게 되면 도움의 손길을 뻗치게 되듯 본연의 마음으로 만사를 처리해 나가면 지극히 크고 굳센 호연지기도 천지간에 자연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맹자의 시각은 대부분의 영적 전통과 그 궤를 같이한다. 모든 영적 전통은 ‘네가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베풀라’를 윤리적 근간으로 삼는다. 불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는 물론 공자 역시 평생 동안 행할 만한 것으로 황금률을 강조한다. 

이 시각에 초점을 맞추면 법과 제도보다는 내적 수양과 사람의 잠재력을 쉽게 해방시켜 최상으로 인도하는 문화적 전환이 우선된다. 예로 자유 평등의 천부인권을 선언한 민주주의 이상은 항상 현실과 비교할 때 그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 구성원의 마음습관이 그 수준에 이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천부인권은 일종의 신화이며 인간잠재력이 완성된 공동체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란 시스템이나 제도이지만 실상은 사람의 가능성을 꽃피우게 하는 문화이며 신화와 현실의 간극을 채워가는 끊임없는 실험이고 학습인 셈이다. 

모든 문화는 밑바탕에 그 문화를 전제하는 정신이 깔려있고 음식을 통해 세대로 전달된다. 악이라는 게 실은 이 문화와 관습으로 인한 것이고 그것이 행위자로 하여금 자신도 왜 하는지 모르는 일을 하게하는 것이면 어떨까. 아무튼 사람들을 최상으로 인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최악으로부터 보호해주지도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다. 맹자도 순자도 없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