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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존

기자명 현진 스님

세간으로부터 존경 받는 여섯 가지 덕목 갖춘 분

여래십호 가운데 하나로
브라만교 ‘바가밧’서 유래
절대 권능을 의미하기보다
백성 고충 달랜 성군 의미

시공을 초월한 부처님의 통칭으로 인식되는 ‘여래(如來, tathāgata)’란 이름에는 열 가지 별칭이 존재하는데, 이를 여래십호(如來十號)라 한다. 여래는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추었기에 응공(應供)이라 하고, 바르고 완전하게 깨달아 일체의 지혜를 지녔기에 정변지(正遍知)라 하며, 깨달음의 지혜와 그 실천을 함께 갖추신 분이기에 명행족(明行足)이라 하고, 생사윤회의 강을 건너 피안으로 온전히 건너가신 분이기에 선서(善逝)라 하며, 이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신 분이므로 세간해(世間解)라 하고, 그 분보다 더 높은 분이 없기에 무상사(無上士)라 하며, 중생들을 잘 제어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열반에 들게 하기에 조어장부(調御丈夫)라 하고, 하늘과 대지의 모든 중생들의 스승이기에 천인사(天人師)라 하며, 깨달은 분이기에 불(佛)이라 하고, 세간의 존경을 받는 분이기에 세존(世尊)이라 한다.

여래십호 가운데 마지막 명호이자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세존(世尊, bhagavat)의 원어 '바가밧'은 ‘덕목(德目, bhaga)을 갖추었다(­vat)’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바가밧’ 혹은 ‘바가반’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브라만교에서도 세간의 존경을 받는 분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고래로부터 바가반이라 불리려면 갖추어야 되는 덕목을 다음의 여섯 가지로 들고 있다.

그 누구도 쉽사리 넘겨다보지 못할 절대적 권능(權能)인 아이싀와르여(aiśvarya)가 첫 번째요, 세상을 아우를 수 있는 가르침으로서의 법(法)인 다르마(dharma)가 두 번째며, 세간으로부터 훌륭하다 인정되어 얻게 되는 명예(名譽)인 야샤스(yaśas)가 세 번째요, 궁핍해진 세상을 구휼할만한 부귀(富貴)인 싀리(śrī)가 네 번째며, 세상을 잘 알 수 있는 지식(知識)인 즈냐너(jñāna)가 다섯 번째요, 커다란 부귀와 많은 지식을 가졌더라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게 하는 무집착(無執着)인 와이라겨(vairāgya)가 여섯 번째이다.

‘바가반’이란 명칭은 꼭 종교적인 성인이나 추상적인 신에게만 적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인도에선 고대에는 물론이요 그 이후로도 세간에서 존경받을 만한 분의 호칭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인도남부에서 중세 이후에 적지 않게 등장하여 백성들의 고충을 함께하며 그들을 구휼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성군들에게도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지역의 왕이 아니라 한 지역의 유지인 훌륭한 브라만에게도….

역사적으로 한 지역의 왕이나 유지인 브라만이 백성들로부터 ‘바가반’이란 이름으로 존경을 받게 된 데는 절대적인 권능이나 법 혹은 명예보다는 백성들을 구휼해줄 부귀와 그 부귀에 집착되지 않고 내어놓을 수 있게 하는 무집착의 덕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그런데 불교경전에 들어온 ‘바가반’은 ‘대지도론’에 다음의 네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첫째가 덕이 있다는 유덕(有德)이요, 둘째가 모든 법을 잘 분별한다는 분별교(分別巧)이며, 셋째가 어떠한 번뇌도 없는 가운데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다는 유명성(有名聲)이요, 넷째가 탐진치의 삼독을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능파(能破)이다.

선서나 무상사처럼 중생의 입장에선 제법 이상적인 호칭과는 달리 세간의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란 ‘바가반’은 다분히 현실적인 어원(語源)을 지녔다. 게다가 다른 명호가 여래의 고유한 별칭이라면 ‘바가반’은 아직 완벽한 해탈에 가닿지 못한 일부 중생도 공유할 수 있는 이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도의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부귀’와 더불어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필요한 이를 위해 베풀 줄 아는 ‘무집착’의 성품을 지녔다면, 그런 이는 최소한 이웃들이 ‘바가반'으로 불러줄 기틀은 갖춘 셈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79호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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