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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음보살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모든 생명 위해 이 몸에 천수천안 생기게 하소서”

상처 받은 몸·마음 달래는 관음
고통 가엾게 여겨 천수천안 갖춰
보리심 발할 때 대비심이 ‘핵심’
‘천수경’ 독송하며 늘 되새겨야

경주 기림사 관음전에 모셔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기림사 제공
경주 기림사 관음전에 모셔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기림사 제공

죽을듯한 괴로움에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으로 한숨짓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의 참 가치는 슬퍼하는 자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그 꺼져 내리는 한 숨과 흐느낌을 껴안고 다독이며 닦아주는 데 있다. 거기서 종교적 영성이 피어난다. 괴로움의 교감과 공감의 영성이 열리지 않는 사회는 캄캄한 어둠이다. 그래서 먼저 아픈 사람들의 흐느낌에 투명한 눈으로 귀 기울일 일이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 그들의 괴로운 슬픔을 듣고 그 아픔으로부터 구제해주는 성인이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온 생명들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나 내 자신처럼 여겨 그들의 아픔과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천 가지, 만 가지로 모습을 드러내는 인류의 자비로운 어머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대비성자(大悲聖者)라 불리며 천수관음의 모습을 보인다. 

천수관음의 특징은 많은 얼굴, 팔, 눈을 지닌 모습과 자비력을 최대한으로 강조한데서 찾을 수 있다. ‘1000’이란 숫자는 사실 무한수를 의미한다. 관음보살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팔로 시방세계에서 신음하는 온갖 생명을 찾아내어 그들의 상처받은 몸이며 마음을 아물게 해 준다. 

천수관음의 대비력으로 그 공능을 현실세계에 적용시켜 큰 선풍을 일으킨 사례가 캐논 카메라다. 캐논의 최초 이름은 ‘콴논(관음의 일본식 발음)’이었다. 콴논을 만든 요시다 고로는 천개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포착하여 필름에 담겠다는 발원을 세운다. 그 결과 캐논은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음보살은 천수천안을 갖추게 되었을까?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經)’에 의하면, 과거 정주여래가 그와 일체 생명을 가엾게 여겨 ‘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를 설하고 그의 이마를 만지면서 “선남자여, 네가 마땅히 이 대비심주를 가지고 미래 그 악독한 세월에 무거운 번뇌로 고통 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하여 널리 이익을 베풀도록 하라”고 수기를 내렸다. 그는 이 다라니를 듣고 환희하여 서원을 세운다. “모든 생명의 이익과 안락을 주기 위해 즉시 이 몸에서 천수천안(千手千眼)이 생겨나게 하소서.” 그 결과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비화경’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거기서 불순 태자는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 서원을 세운다.

“제가 보살도를 행할 때, 온 생명들이 괴로움과 공포 등의 일을 겪고 정법에서 멀어져, 큰 어둠 속에서 근심과 걱정으로 의지할 곳도 없으며, 가난하여 도움을 청할 곳도 없으며, 옷도 없고 집도 없을 때, 나를 생각하고 나의 이름을 부른다면, 나는 천 개의 귀로 듣고 천 개의 눈으로 보아, 이들 온 생명들이 그러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끝내 무상보리를 이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야 할 점은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이다. 보리심의 핵심은 대비심이다. 대비심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너, 나와 세상이 서로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생명 공동체라는 자각이다. 그것은 온 생명을 향한 자비에 깨어 있음이다. 모든 존재는 빈 공간, 틈, 사이를 간직하고 있다. 현대철학자 데리다나 지젝도 이를 중요시한다. 그 틈, 사이, 빈 공간은 나이면서 내가 아니고 타자이면서 타자가 아닌 곳이다. 이 틈에서 내가 비워지고 그 자리에 타자가 들어온다. 다시 말해서 그 빈자리로 인하여 나는 타자를 매개로 내가 되고 타자는 나를 매개로 진정한 타자가 되어 서로 어우러진다. 모든 존재는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어우러져 서로에게 구원이 된다. 보살은 바로 이러한 존재의 원리와 생명의 흐름에 눈을 뜬 자각적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타자란 가족, 친구, 이웃이요 주변의 온 생명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자각적 인간이라면 타자의 슬픔과 눈물을 닦아줄 수밖에 없다. 그 자각적 인간인 보살은 보리심을 발할 수밖에 없다. 

‘관세음보살왕생정토본연경(淨土本緣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여기서는 조리(早離)와 속리(速離)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유복한 집안에 살았으나 어머니가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어머니는 어린 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도에 잘 다가서려면 보리심을 발하는 것 이상은 없다. 보리심이란 대비란다.”

두 아들은 마음씨가 고약해진 양모를 만나 절해고도에 외롭게 남겨진다. 그들은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어머니의 유언을 떠올리고 무상보리를 발하여 보살의 대비를 성취하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그래서 부모가 없는 사람에게는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스승이 없는 사람에게 스승으로 나타나는 등 모든 존재의 절실한 바람에 따라 나타나리라고 원을 세운다. 이로 인해 이들은 죽어서 조리는 관세음보살로, 속리는 대세지보살로 환생한다. 

절체절명의 죽음 한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보리심을 발하고 원을 세워 아파하는 다른 사람들을 그 고통을 구해내겠다는 비원이 애잔하게 흐른다. 이 대목에서 세월호 침몰로 저 세상으로 간 단원고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헌정한 임형주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 추모곡을 떠올려 본다. 조리와 속리가 품은 발원의 노래라 해도 손색이 없다.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죽음이 다가오는 절망의 순간, 보리심을 내어 모든 생명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원력을 품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를 포기하고 천의 생명들을 살리려 마음먹을 때, 그의 삶은 온 생명의 자비로운 님, 천수관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천수관음의 원력으로 세상을 산다면 두려움은 없다, 세상은 아름답다, 새로운 창조의 세계가 열린다. 우린 천강에 비친 달처럼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할 일이다. 이런 자세로 ‘천수경’을 독송하며 보리심을 깨워 볼 일이다. 그러할 때 우리 불교는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의 괴로움을 보고 천 개의 손으로 타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열린 종교성으로 깨어날 것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79호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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