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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빔비사라왕과 하이든

기자명 김준희

후견인 전폭적인 지지로 펼쳐진 비범한 재능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
현악 4중주 등 음악사에 큰 족적 
비범함 알아본 후견인 안목이
진보적 시도 가능케 한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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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닷타 후원 자처한 빔비사라왕
죽림정사 기증 등 수행 환경 조성
든든한 후원 덕에 과감한 설법도

죽림정사 전경.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죽림정사는  붓다와 제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다.

요제프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평생을 100곡이 넘는 교향곡과 30여곡의 현악 사중주를 작곡하며 그가 음악사에서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에는 후견인의 영향이 컸다. 1761년, 하이든은 헝가리의 귀족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의 카펠마이스터가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음악감독, 그리고 위촉 작곡가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1년 후 파울의 동생인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치 공이 궁정 악단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하이든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이든은 일정한 봉급을 받으며 안정된 신분으로 에스테르하치 가문에서 30년이나 일했다.

하이든이 봉직하던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중심이 되는 공개 음악회와 애호가들이나 선택된 소수의 친구들만 초대된 비공개 음악회를 모두 열었다. 하이든은 비공개음악회를 위해 실내악 작품들도 작곡하기 시작했다. 작은 살롱에서 소규모 관객을 상대로 한 음악회에 가장 적합한 규모의 장르인 트리오나 현악 사중주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에스테르하지 공은 유망한 젊은 연주자들을 발굴하는 안목과 재력을 동시에 지녔으므로 하이든이 훌륭한 작품을 쓰고 발표하는데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하이든은 다섯 악장의 짧은 춤곡이나 작은 규모의 악장들로 구성된 디베르티멘토의 형태로 존재해 왔던 현악 4중주를 짜임새 있는 네 악장의 구성으로 압축시켰다. 실제적으로 교향곡과 같은 구성이었으며, 느린 두 번째 악장에서 론도, 변주곡 등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였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Hob.III :49 Op.50-6은 ‘개구리’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1악장부터 마지막 악장에 이르기까지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의 뛰노는 모습이 연상되는 밝고 활기참이 연상되는 작품으로 봄의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하이든이 30년간 작품활동을 했던 에스테르하지가(家)의 별장.  

Op.50의 이전까지의 작품들은 대중 공연이나 출판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하이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하이든이 현악 4중주에 대한 경험적 연구와 더불어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게 되었고, 이 규모가 크고 신선한 곡들은 연주자들에게 더욱 더 환영을 받게 되었다. 에스테르하지 공의 전폭적인 작품 활동에 대한 지지는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것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이 널리 알려지는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은 여러 사람을 보던 중에 싯닷타를 만나게 된다. 유난히 자태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에 여러 무리중의 사람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가까이에서 본 출가자 싯닷타는 누가보아도 지혜와 식견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24세의 젊은 빔비사라왕은 싯닷타에게 함께 올바른 정치를 하며 나라를 다스려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당시 마가다국은 이웃 코살라국과 함께 북인도의 16개 국가 중 가장 세력이 큰 국가였다. 하지만 싯닷타는 '저는 세상의 쾌락과 욕망에서 재난을 보았습니다'라는 말로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 왕은 태자의 결심이 확고함을 확인하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성취하거든 저를 찾아 주기 바랍니다. 제가 당신의 후원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6년 뒤, 싯닷타는 깨달은 자, 즉 붓다가 되어 빔비사라 왕과 재회했으며 빔비사라는 왕으로서는 최초로 붓다의 제자가 된다. 빔비사라의 귀의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마가다국의 왕의 귀의는 순식간에 북인도 일대에 알려지게 되고, 이는 붓다의 활동에 가장 단단한 배경이 되었다. 

빔비사라왕은 죽림정사를 기증하여 붓다와 그 제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붓다의 제자들이 사회적으로 보호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이는 기성종교와 사상가들에게 크나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붓다는 당시 바라문 중심의 질서 세계를 정면 비판했다. 그 결과로 왕권강화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한 통치계층과 신흥강자로 부상한 자산가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받게 되었다. 붓다가 카스트(와르나)제도의 중간 계급이었던 이들이 사회 전면의 지도자적 위치로 부상하는데 큰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

붓다는 전통을 적절히 수용하는 태도로, 기존의 종교나 사상에서 널리 알려진 것을 그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대중들에게 전파했다. 설법을 들은 이들은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내용을 쉽고 인상 깊게 전달하는구나’ 라는 반응을 보였다. 붓다가 공공의 라이벌이 되는 위험성을 가지고도 용기 있는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빔비사라왕의 든든한 후원의 힘이 컸다.
하이든의 초기 작품 중에는 각각 ‘아침’ ‘점심’ ‘저녁’ 이라는 부제를 가진 교향곡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으로 바로크시대의 합주협주곡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고전시대 교향곡의 틀을 갖추고 있다. 또한 현재의 오케스트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하프시코드(쳄발로)가 통주저음을 담당하고 있고, 현악합주에 목관과 금관악기를 덧붙인 소규모의 2관 편성으로 연주된다. 후에 이것이 오케스트라의 형태의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지인들의 조찬모임, 저녁연회 등에서 사용할 배경음악 같은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에스테르하지 공의 주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의 종달새의 지저귐과 오후의 나른함, 저녁의 평온함을 담고 있는 이 곡들은, 혹시 그의 후원자 에스테르하치 공이 하이든을 아침, 점심, 저녁 내내 음악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에 대한 보답은 아니었을까?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후원과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과의 인연, 하이든의 남다른 음악을 알아본 에스테르하지 가문과 붓다의 비범함을 놓치지 않은 빔비사라왕의 존재가 우리에게는 크나큰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경칩을 앞둔 이때, 계절과도 어울리는 하이든의 현악4중주를 들어보자.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그에게 아침(또는 점심, 저녁)이 되어주는 음악가의 따뜻함이 전해진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79호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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