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인다라의 ‘단하소불도(丹霞燒佛圖)’
28. 인다라의 ‘단하소불도(丹霞燒佛圖)’
  • 김영욱
  • 승인 2019.03.04 16:42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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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가 없다면 어찌 특별하다 하는가”

불상은 종교적인 상징물일 뿐
그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형상만 집착하는 사람들 경책
인다라 作 ‘단하소불도’, 14세기, 종이에 먹, 35.0×36.8㎝, 일본 석교미술관.
인다라 作 ‘단하소불도’, 14세기, 종이에 먹, 35.0×36.8㎝, 일본 석교미술관.

佛在爾心頭(불재이심두)
時人向外求(시인향외구)
內懷無價寶(내회무가보)
不識一生休(불식일생휴)

‘부처는 네 마음속에 있는데 지금 사람은 밖에서만 구한다네. 안에다가 값 매길 수 없는 보물 품었건만 알지 못하고 일생을 놀기만 하는구나.’ 일선(一禪, 1533~1608)의 ‘은선암에 머물며 우연히 읊다(留隱仙偶吟).’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화상은 당나라 때의 고승이다. 불가에 출가하기 이전의 행적은 분명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과거를 보기 위해 장안으로 가던 중에 한 여관에 머물다가 꿈을 꾸었고, 꿈을 풀이하자마자 곧 남쪽에 있는 마조(馬祖) 선사를 찾아가 불가에 입문했다.

겨울의 어느 날, 단하 화상이 혜림사(慧林寺)라는 절에 도착했다. 주지가 불상이 모셔진 방으로 안내했는데, 단하는 혹독한 추위에 못 이겨 나무로 된 불상을 태워 몸을 따뜻하게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주가 부랴부랴 뛰어와서 “왜 절에 있는 소중한 불상을 태웁니까?”라고 탓하자, 화상은 지팡이로 재를 긁어모으며 “부처의 사리를 찾고 있소”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주는 그의 대답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어찌 나무로 만든 불상에 사리가 있겠소?”라고 따지니, 화상이 답했다. “사리가 없다면 왜 나를 탓하시오?”

이 이야기는 ‘경덕전등록’과 ‘오등회원’에 실린 이래로, 중국과 일본에서 선기도(禪機圖)의 주제로 빈번히 그려졌다. 그중 가장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전하는 작품이 원나라 화가 인다라(因陀羅)의 그림이다. 화면에는 기교 없이 먹으로만 그려진 두 인물이 있다. 왼쪽에서 불상을 태운 불에 두 손을 대고 쪼그려 앉아 뒤를 돌아보고 있는 인물이 단하 화상이고, 나무 옆에서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타고 있는 불상을 가리키며 서 있는 인물이 혜림사 주지이다. 원나라의 선승 초석범기(楚石梵琦, 1296~1370)가 화면에 적은 시구 중에서 “본래 사리가 없다면 어찌 특별하다 하는가?”라는 부분은 이 그림의 본질을 명확히 전달한다.

불상은 부처에 대한 종교적 상징물이다. 더불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상징한다. 결국, 불상이란 중생이 지닌 불심을 사물로 구현한 형상에 불과하다. 부처에 대한 마음인 불심이 이미 내 안에 있음에도, 눈앞에 놓인 외적인 형상만을 고집하는 것은 전혀 의미 없다. 

흙으로 빚은 불상이 비바람에 의해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나무로 조각한 불상이 불에 타서 재로 변하고, 금속으로 주조한 불상이 녹아 한낱 쇠붙이로 된다 한들, 마음의 불심도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퇴옹(退翁) 선사께서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우리 모두 자신이 부처님이다”고 했다. 이미 내 마음이 부처인데, 지금의 사람들은 그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마음을 빚어놓은 형상에만 집착한다. 불상을 태우며 내뱉은 단하 화상의 한 마디는 그 어리석음마저 태우라는 묵직한 가르침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79호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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