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살라딘의 관용
105. 살라딘의 관용
  • 김정빈
  • 승인 2019.03.12 16:10
  • 호수 1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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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살육한 기독교인 포로도 생명을 잇게하다

이슬람 왕들 중 가장 이름난 왕
유럽의 기독교인들에 빼앗긴 땅
이슬람권 술탄들과 함께 수복해
기독교인 포로들 돈주고 풀어줘
자비로운 관용 베풀자 적도 감화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살라딘(Saladin)은 이슬람권 술탄(왕)들 가운데 다른 문화권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137년에, 제2차 십자군 전쟁 때 다마스쿠스 방어군 사령관으로서 유럽군을 패퇴시킴으로써 그 지역 총독이 된 아이유브의 아들로 태어났다. 얼마 후, 그 일대의 통치자였던 누레딘은 수도를 다마스쿠스로 옮겼고, 어린 살라딘은 누레딘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이집트는 300년 전에 성립한 파티마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왕조는 시리아, 수단, 아라비아반도까지 진출했다. 왕조의 칼리프는 알 아디드였는데, 심신이 허약한 인물이었다. 그에 의해 살라딘은 이집트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재상이 되자마자 그는 반란군을 제압하고 예루살렘 국왕 아모리 1세를 물리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졌다. 1174년, 살라딘은 260년간 이집트를 다스려 온 파티마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미르가 되었는데, 아미르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사령관이자 총독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왕과 다름없지만 그 위에는 이슬람권 전역을 지배하는 진짜 왕으로서의 술탄이 있다.

살라딘은 술탄이 지배하던 영역을 남쪽으로부터 야금야금 차지해 들어갔다. 그러다가 말리크, 즉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왕조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두 왕조는 서로 경쟁을 벌였고, 최후의 승리는 살라딘이 차지했다.

살라딘은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수복해야 한다는 목표를 내세워 자신에게 반발하는 아랍권 지도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는 모든 이슬람권 술탄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향했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1187년, 살라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다.

전에, 이 도시가 십자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기독교인들은 아랍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했었다. 하지만 살라딘은 포로가 된 기독교인들을 몸값을 받고 석방했다. 그는 자신이 그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기까지 함으로써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패전에 충격을 받은 유럽은 잉글랜드,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등 당대의 힘 있는 국가가 힘을 합쳐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죽고, 프랑스의 필리프 2세는 국내 사정을 핑계로 돌아가 버렸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잉글랜드의 리처드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는 만만치 않은 전사였다.

리처드는 아크레와 야파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살라딘은 아스칼론을 점령했다. 서로 승리를 주고받던 그들은 1192년에 현 상태를 유지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에 있었던 오리엔 지역의 일부 기독교 영역이 살아남게 되었지만, 예루살렘은 살라딘의 아랍권역에 속하게 되었다. 다만, 살라딘은 기독교 순례자들이 무슬림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예루살렘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살라딘이 서구에서도 인기가 높은 이유는 그가 사자왕 리처드와 대결할 때 보여준 신사적 태도 때문이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호적수를 넘어 영웅으로, 영웅을 넘어 친구처럼 생각했다.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와중에도 상대방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리처드가 열병에 걸려 병상에 눕자 살라딘은 위로의 편지와 약을 보냈다. 전투 도중 리처드가 말을 잃었을 때는 명마 두 필을 선물했다. 협정을 맺는 자리에서 리처드가 “조만간 다시 올 테니 그때 승부를 짓자”고 말하자 살라딘은 “이 땅을 누군가에게 내주어야 한다면 당신 같은 사람에게 주고 싶다”라고 응수했다.

살라딘은 1193년 전쟁을 끝내고 다마스쿠스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눈을 감았다. 광활한 제국을 지배한 술탄답지 않게 검소했던 그의 수중에는 무덤 하나 세울 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살라딘이 당시의 왕조를 무너뜨렸을 때의 일이다. 왕조를 물려받는 서명식이 끝났을 때, 소년왕 앗 살리흐의 누이인 열 살짜리 소녀가 다가와 공손히 절을 했다. 살라딘이 물었다. “공주는 무엇을 원하오?” “아자즈 성입니다.” 살라딘은 웃으며 소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살라딘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어려운 일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항상 북적였고, 그래서 그의 방석이 해질 대로 해져서 남아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배반하는 사람에게는 용서없는 처벌을 가했다. 그가 술탄에 오르고 난 직후에 자신의 사위인 나시르 앗 딘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를 독살해버렸다. 그러나 온정이 많았던 살라딘은 아버지를 잃은 외손자를 세심하게 배려했다. 어느 날 그가 외손자에게 코란에 대해 묻자 소년이 코란 한 구절을 암송했다.

“고아들의 재산을 부당하게 삼킨 자는 자신의 뱃속에 불을 심는 것과 같나니, 이리하여 자신도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이리라.”

살라딘은 소년을 꾸짖는 대신 그의 영민함을 칭찬했다고 한다.

우리 문화권에서 이슬람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보가 적기도 하고, 그 문화가 낯설게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는 지금 유럽에서 발달한 문화에 의해 거의 지배되고 있는데, 유럽문화는 기본적으로 이슬람을 중심으로 하는 아랍 문명권에 대해 적대적인 성향이 강하다.

종교를 이성과 감성이라는 양면으로 비추어 보면, 이성 면에서는 논리적 철학으로 나타나고 감성 면에서는 논리가 대상을 추론하기를 그친 지점에서 믿음으로써 성립한다. 이중 전자로만 보면 기독교의 신 야훼는 이슬람의 신 알라가 아니고,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일신교 철학은 절대신을 인정하지 않는 불교철학과 흑과 백처럼 다르다. 

하지만 감성 면으로 시점을 옮겨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 영역에서 인간을 구별 짓는 철학은 활동을 멈추게 되고, 인간성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이 인간성 면에서 겉모습으로서의 종교가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라딘은 바로 그 영역에서 인간의 고귀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고귀함은 적대자인 리처드 왕까지 감동시키기에 이르렀다. 한 불제자로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불교철학을 소중히 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철학적 분별이 그친 영역에서의, 인간의 근본적인 동일성, 그로부터 도출되는 관용의 정신일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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