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열반과 브라흐만
10. 열반과 브라흐만
  • 현진 스님
  • 승인 2019.03.12 16:17
  • 호수 1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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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탐진치 등 모든 해로운 심리현상 사라진 상태

불교수행 목적은 열반성취
브라만교 브라흐만과 유사
죽어 있는 어떤 상태 아닌
현실세계의 이상적인 형태

열반(涅槃, nirvāṇa)이란 글자를 풀어보면 ‘불어서(√vā) 끈(nir­) 것(­ṇa)’이란 의미인데, 정황상 불어서 끈 대상은 ‘열기’가 되므로 ‘열기를 불어서 꺼버린 상태’를 열반이라 한다. 열기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가리키므로,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를 열반이라 하는 말은 그렇게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꼭 열기만이 괴로움일 수는 없다. 무더운 인도라는 인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표현될 뿐이니, 만약 불교가 시베리아에서 생겼다면 열반은 분명 ‘냉기를 훈풍으로 불어 없애버린 상태’라고 정의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열반은 열기로 대표되는 탐진치 등의 모든 해로운 심리현상이 사라져버린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열반은 결국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 물론 열반을 죽음과 연관 지어 허무주의로 이해하는 오해 정도는 이미 겨우 몇 발자국 내디딘 초심의 불자님이라도 모두 극복했을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열반을 죽지 않고 평화로우며 병이 없고 최상의 행복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대승불교에서는 영원하고[常], 행복하며[樂], 궁극적인 실재요[我], 깨끗한[淨]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 열반은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의 해탈(解脫, mokṣa)과 동일시되는데, 굳이 편가름을 하자면 열반은 목표(目標)에 가깝고 해탈은 목적(目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열반과 해탈의 개념은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가 불교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것과는 달리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도 존재했었다.

불교수행의 목적은 열반의 성취이며, 브라만교에서 수행의 목적은 절대존재인 브라흐만(brahman)과 하나가 되는 상태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가늠자에 기준한다면 불교에서의 열반 혹은 해탈의 상태는 브라만교에서 절대존재로 상정하고 있는 브라흐만의 상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브라흐만의 상태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베딕사상의 최고봉이자 인도철학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우빠니샤드(upaniṣad) 가운데 초기에 속하는 브릐핫아란야까(bṛhadā raṇyaka) 우빠니샤드의 몇 구절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열반 혹은 해탈이 브라흐만과 별개의 개념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들이 공(空)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것이 아니다. 저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브라흐만에 대한 전형적인 서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것에 비해 어떠하다’라거나 ‘어떠하지 않다’라는 식의 서술보다 더 나은 브라흐만에 대한 표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릐핫, 2.03.06’

그것은 거대하지도 미세하지도 않으며, 짧지도 길지도 않으며, 색깔을 지니지 않으며, 맛볼 수 없으며, 냄새 맡을 수 없으며, 볼 수 없으며, 들을 수 없으며, 말할 수 없으며, 생각할 수 없으며, 가늠할 수 없다. ‘브릐핫, 3.08.08’

어떤 대상을 표현할 때 그것을 직접 그려내지 않고 그 밖의 것으로 부정하는 이와 같은 서술방식은 공(空)을 설명하며 아니다[不]거나 없다[無]는 표현으로 가득 찬 ‘반야심경’에서도 볼 수 있다. 

공(空, śūnya)이란 개념은 단순히 ‘비어있다’라는 단어의 의미 때문에 그저 텅빈 허무주의로 연결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 즉, 공이란 사물이 비어있다는 말이 아니라, 일체만물은 ‘나’라고 할 만한 고정불변의 실체인 자성(自性)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열반 혹은 해탈은 브라흐만과 연결이 되고, 브라흐만은 불교의 공과 다를 바 없으며, 그러한 공은 결국 현실세계의 실상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열반은 그저 죽어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세계의 이상적인 형태인 셈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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