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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민주주의와 소피아의 회복

기자명 고용석

강박적 소비 이면엔 풍요속 결핍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검토는
풍요, 결핍 등 문제와 직결돼
육류식단에 익숙해진 아이는
생명을 상품으로 인식하기도

한 사람이 죽자 그는 우선 지옥으로 안내받는다. 만찬이 펼쳐져 있음에도 사람들이 지닌 젓가락이 너무 길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모두가 굶주려 절망적이었고 고통은 참으로 끔찍했다. 잠시 후 그는 천국으로 안내받는다. 놀랍게도 천국은 지옥과 똑같았다. 단지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가 잘 먹어서 행복하며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긴 젓가락을 이용해 서로에게 먹여 주었기 때문이다. 

인간본성에 대한 검토는 삶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제가 ‘풍요냐 결핍이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 전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현재의 정치 경제의 잘못된 점에 대응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중대한 관건이다. 예로 삶이 정글이라면 실제 정글이 아니라 전제로 인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 정글에서 자라는 방식으로 표현되기에, 실제 정글을 현실화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현실과 소비주의 강박증 그리고 전 지구적 지속가능성 위기는 삶의 전제가 결핍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풍요로 삶을 전제하면 자연을 소득이 아닌 자본으로 여기며 어떻게 잘 협력하며 공정하게 기존의 식량과 토지 자원 등을 낭비 없이 잘 관리하며 분배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지만 결핍의 전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생산하는가에만 집중하며 얼마만큼 풍요로운 공급원을 줄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나 미래 자본을 파괴하고 스스로를 위협에 빠뜨리고 있는지를 보지 못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풍요 속에서 결핍을 생산하고 스스로 우리가 혐오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희망이 보이는 것은 현 체제의 힘을 이용해 빈곤과 기아, 불평등 환경파괴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들이 두각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비거니즘을 비롯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구민주주의, 효율적 이타주의, 풀뿌리운동, 에코페미니즘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인간을 이기심이라는 일면만을 보는 체제 속에서 인간의 다른 측면 즉, 다면성을 반영하는 시도들이다. 또한 고대 농경사회의 풍요와 양육의 여신이자 인간 내면의 양육하고 돌보는 본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소피아(Sophia: 철학은 어원적으로  Philosopia 즉 ‘소피아에 대한 사랑’을 뜻함)를 회복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류 내면문화의 주요한 상징이자 우주와 인간본성의 메타포인 음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우리는 어릴 때부터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문화나 부모에 의해 끼니마다 동물의 살을 먹을 것을 강제당한다. 반복되는 식사는 자신도 모르게 생명체를 물건으로, 상품으로 보도록 훈련한다. 인간과 자연을 도구로 보고 협력과 조화보다는 경쟁에 익숙케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의 본성인 소피아를 억압함으로써 인간의 지성 창조력 창의성의 발현을 근본적으로 막는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 황폐해진 생태계, 후손에 끼치는 고통과 단절하는 데도 익숙해진다.

과연 민주주의가 오로지 정당과 선거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국민시인 휘트먼은 “민주주의 쓸모 있는 것은 우리가 주고받는 최상의 관계에서 종교 대학 문학 학교 등 모든 공적 사적 영역의 민주주의에서 꽃과 열매로 피어나기 때문이다”고 노래한다. 

비건(완전채식)은 관대함, 생명, 평화, 풍요를 상징하며 만물이 한 생명이라는 확장된 휴머니즘을 지향한다. 인류본성에 공감과 연민의 씨앗을 발현한다. 뭇 생명과 경제 생태계 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마음 다함에 기초하며 일상의 민주주의를 구현한다. 매 끼니마다 시장에서 무엇을 구입하느냐는 일종의 선거이자 투표행위이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는 일상과 거시적인 것, 개인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우주적 공공성을 담는다. 소피아의 회복을 전제한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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