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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한용운의 ‘님의 침묵’

기자명 김형중

근대 시단에 시 창작 교과서 역할
근대문학사에 남긴 불후의 업적

10행 이루어진 산문조 자유시
‘님의침묵’은 유마침묵서 유래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정적
잃어버린 조국 되찾을 것 염원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으로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3·1운동은 민족사에서 위대한 쾌거 중 하나다. 만약 3·1운동이 없었더라면 우리 민족은 스스로 자주국임을 부르짖을 줄 모르는 미개한 민족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3·1운동을 앞장서 지휘한 지도자가 한용운 스님이다. 33인 대표 중에서도 변절한 이들이 있었지만, 끝까지 조국의 독립에 대하여 지조와 절조를 지켰다.

한용운(1879~1944)은 ‘님의 침묵’(1926)이란 시집을 발표함으로써 한국 근대문학사에도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당시 서구의 시를 번안(翻案)하는 형식의 시 수준에 머물던 한국 근대시단에, ‘님의 침묵’을 발표함으로써 시 창작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님의 침묵’은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의 침묵”에서 유래한다. 유마의 침묵은 깨달음을 얻기 직전 선정(禪定)의 고요 즉, 삼매이다. 폭풍 전야와 같은 고요와 정적이다. 선정 삼매 후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태산을 무너뜨리는 사자후(獅子吼) 설법이 뒤따른다.

‘님의 침묵’은 압제에 꿈적 못하는 침묵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벼락천둥처럼 일어나기 위해 마음 먹는 준비시간의 침묵이다. 시집의 마지막 시 ‘사랑의 끝판’에서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라고 읊고 있다. 침묵은 끝나고 님을 만나기 위한 행진을 시작하는 명령이다.

‘님의 침묵’은 10행으로 이루어진 산문조 자유시이다. 전반 1∼6행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으로 날아갔습니다./…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고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슬픔을 읊고, 후반 7∼10행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라고 역설법을 통하여 떠나간 님을 다시 만나겠다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님’은 조국이고, ‘이별’은 일본에게 빼앗긴 조국과의 이별이다. 만해는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불교의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순환 윤회의 진리를 근거로 제시하며 잃어버린 조국을 꼭 되찾을 것을 염원하고 있다. 위당 정인보는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고 했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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