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청년승려 범산
100년 전, 청년승려 범산
  • 이경순
  • 승인 2019.03.18 10:33
  • 호수 14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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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이즈음인 3월에서 4월초, 젊디젊은 눈 푸른 납자들이 산문을 박차고 나와 전국 각지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3·1운동의 확산을 이끈 주역들 중 일부가 바로 청년승려였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대한독립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가득했다. 일제에 대한 항거에 앞장선 그들 중 한명이 바로 범산 김법린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신념이 남다른 인물이었다. 그가 12살 때(1910년) 목격한, 조국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 통곡하는 어른들의 몸부림과 서러워하던 모습은 이후 인생을 지배하는 자극이 되었고, 평생 동안 조국독립의 염원이 유일의 신념처럼 몸에 배게 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범산은 10대 중반 고향 영천 은해사로 출가한 후 범어사로 옮겨 승려생활을 했고, 사찰 공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휘문의숙을 거쳐 중앙학림에 진학하였다. 이후 만해 한용운을 만나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게 되었고 나아가 3·1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걸게 되었다.

범산은 1919년 3·1운동 당시, 고작 스물을 넘긴 앳된 청년 승려였다. 그는 범어사의 만세시위에 관여한 뒤 상해로 밀항하여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활동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1921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대학(소르본)에 유학했으며, 1927년에는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여하여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귀국한 후에는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를 주도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초기불교와 인도철학을 수학하면서 조선불교청년총동맹 활동을 이어갔다. 1930년대 전반 ‘불교’지 주간을 거쳐 다솔사 강원, 해인사 불교전문강원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교단을 인수받아 중앙총무원장을 역임하였고, 정치에 뛰어들어 과도정부 관선 입법위원으로, 1952년에는 문교부 장관으로 활약하였다. 1954년에는 자유당 후보로 제3대 민의원에 출마했으며 1959년에는 초대 원자력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63년에는 동국대 총장으로 학교의 개혁을 이끌다가 다음해인 1964년 과로로 순직하였다.

범산은 식민지기 내내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지속하였으며, 해방 직후 불교계 3·1운동의 전모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논설을 남기기도 하였다. ‘신생’과 ‘신천지’ 잡지에 글을 기고하여 불교계의 3·1운동 활약상이 폭넓게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서구의 근대불교학을 식민지 조선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근대불교의 대표적 지성이었으며 민중본위의 불교사상, 현실참여의 불교사상을 실천하고자 한 불교개혁가였다. 또한, 해방 후에는 한국의 정치, 교육, 사회 각 방면에서 지도적 인물로 활약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관련 행사와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독립 그 날이 오면’ 특별전에 바로 이 범산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에서는 프랑스 파리대학의 학적부, 파리유학 시절의 사진, 세계피압박민족대회 당시 범산의 연설문이 실린 책자, 범산의 참의원 선거 홍보물, 외교여권, 친필 이력서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범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 하나하나를 곱씹어 볼만한 귀중한 자료들이다. 특별전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의 전시 의도는 3·1운동의 경험과 그 경험이 이후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17명이 겪은 삶의 궤적을 보여주면서 3·1운동이 한국사회에 미친 거대한 그림자를 드러내는 것이다. 범산이야말로 3·1운동의 경험과 그 경험이 미친 영향을 극명히 보여주는, 전시 취지에 걸맞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범산 김법린은 만해를 비롯한 근대불교계와 3·1운동이라는 역사적 계기가 성장시킨 한국사회의 거목이었다. 100년 전 이즈음 방방곡곡의 산문을 깨치고 터져 나온 푸르른 만세 소리와 함께 오늘의 불교계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glib14@korea.kr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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