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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베이터 연명하는 아기 안아볼 수도 없어

  • 상생
  • 입력 2019.03.18 10:58
  • 수정 2019.03.19 14:49
  • 호수 1481
  • 댓글 0

캄보디아 노동자 촌스레이넷씨
임신하고도 농장서 하루 8시간
7개월만 응급실서 1.2kg 조산
3000만원 넘는 눈덩이 병원비

촌스레이넷씨는 힘겹게 세상 빛을 봐야했던 첫 아기 디시야린을 안을 수도 심지어 직접 볼 수도 없다. 진주에 소재한 이주민쉼터에 의지하고 있는 촌스레이넷씨는 차량으로 2시간 떨어진 양산의 한 병원 인큐베이터 안에서 힘겹게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아기를 사진으로만 만나고 있다.

2월말 출산한 캄보디아 출신 촌스레이넷씨(31)는 아기를 안고 싶어도 안을 수가 없다. 젖을 물릴 수도, 새벽잠을 설치며 보채는 아기를 안아 달래는 고충마저도 사치가 돼버렸다. 

촌스레이넷씨의 첫 아기 디시야린은 지난 2월22일 태어나자마자 대학병원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의지해 호흡하고 있다. 임신 7개월 만에 1.2kg의 무게로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몸에 호흡기를 꽂고 큰 수술까지 견디며 하루하루 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병원 측에서는 적어도 45일은 인큐베이터에 머물러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촌스레이넷씨도 디시야린이 하루 빨리 인큐베이터를 나와 힘차게 울며 엄마와 함께 호흡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음은 항상 아기 곁에 있지만 정작 자신은 양산에서 차량으로 2시간 떨어진 경남 진주의 이주여성 쉼터에 머물고 있다. 하루 한 차례, 그것도 인큐베이터 창 너머로 아기와의 짧은 만남을 위해 진주에서 양산을 오가기란 일반인도 감당하기 벅찬 일이다. 게다가 촌스레이넷씨는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산모다. 

촌스레이넷씨는 아기가 태어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밤중 갑작스런 통증과 하혈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조산이었다. 1.2kg의 몸무게.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 중에도 하루 8시간씩 농장에서 일해야 했지만 언제나 밝고 누구보다 성실했다.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면 일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무 내색없이 낮에는 묵묵히 일하고, 저녁에는 태교에 전념했다. 아빠가 될 예비 남편은 한국에서 만난 같은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였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남편은 비자 기간 만료로 귀국해야 했다. 촌스레이넷씨도 3월 중순 캄보디아로 돌아가 남편과 고향에서 출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조산에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촌스레이넷씨의 소식을 전해들은 예비 남편은  당장 한국에 달려오고 싶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 이주노동자 신분이었던 그가 다시 한국행 비자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조산의 충격보다 더 큰 일이 닥쳐왔다. 응급실에서의 출산과 디시야린의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치료 등으로 병원비가 3월2일 기준  이미 3000만원이 넘었다. 한국에 온 지 3년, 일터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고 급여는 모두 고국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상황이었다. 

출산 후 작업장 기숙사에는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산후조리는 엄두도 못내고 있던 촌스레이넷씨의 안타까운  처지를 전해들은 통도사자비원 산하 창원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소개로 진주사랑의집에서 운영하는 쉼터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것이 그나마 행운이었다. 비록 양산에 있는 병원의 아기와는 떨어져야 하지만 당장 머물 곳이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다행히 쉼터에 있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들이 촌스레이넷씨 회복을 돕는데 힘쓰고 있다. 덕분에 늦은 산후조리를 하며 조금씩이라도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하지만 아픈 아기를 위해 촌스레이넷씨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 종일 아기의 사진을 보며 건강하기만을 간절히 염원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매일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병원비다. 건강보험도 없는 이주노동자에게 기댈 곳이라고는 없다.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가 더 큰 근심이 되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촌스레이넷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휴대폰 속 아기 사진만 손으로 매만지고 있는 촌스레이넷씨에게는 눈물 흘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 725-7010

진주=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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