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럼없이 자기 자랑을 일삼는 시대다. SNS에 언제 어느 곳을 여행하고,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먹었는지 실시간으로 중계하듯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반면에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심지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기까지 한다. 나만 빼고 다들 능력 있어서 재미있고 화려하게 사는 것 같은 마음에, 밖으로 눈을 돌릴 때마다 마음이 더 허전해지기도 한다.
그동안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시작으로 ‘거침없는 그리움’ ‘깊은 위로’로 이어지는 동양미술 에세이 시리즈를 비롯해 ‘그림공부 사람공부’ ‘좋은 그림 좋은 생각’ ‘그림공부 인생공부’ 등을 펴냈으며, 법보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 ‘옛 그림, 불법에 빠지다’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등을 선보여 대중들로부터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온 ‘그림 읽어주는 작가’ 조정육도 자신이 재능 없는 작가라는 우울함에 빠질 때가 있었다.
어느 해 송년 모임에 갔다가 한 달 만에 책 한 권을 썼다는 작가, 일주일 만에 소설 한 편을 썼다는 작가 등 다른 작가들의 자랑에 그만 자신의 모자람만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날 밤 우울한 마음에 펼쳐든 경전에서 만난 주리반특 이야기는 작가로 하여금 자신은 물론 세상 사람들이 잊고 지내던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했다.
공부에 전혀 진전이 없어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던 주리반특이,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서 “나는 먼지를 턴다, 나는 더러움을 닦는다”를 외우고 외운 끝에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한 달에 책 한 권을 쓰든 일 년에 글 한 편을 쓰든 결국 완결성이 문제일 것이다. 빨리 가나 더디 가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받는 거창한 일을 하는 것만이 인생의 선물이 아니다. 하찮게 생각하는 일상도 인생의 선물이다. 그 진리를 알게 되면 내가 서 있는 곳이 꽃자리가 된다. 여러 선사들이 밥 하고 옷 만들고 농사짓는 것이 바로 도(道)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런 의미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습니다’는 그림 읽어주는 작가답게 그림에 담긴 세계를 풀어내고 일상의 깨달음을 잔잔하게 전하는 글로 가득하다. 작가는 이 그림 명상 에세이에서 일상의 삶에서 발견하는 행복을 말하고 있다. 특히 옛 그림을 통해 인간 정신의 진수를 전하는 데 탁월한 작가는 신작 에세이 ‘오늘 하루도 잘 살았습니다’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그림 앞에서 삶의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내 비춰 보이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세상 사람들이 삶의 순간순간에 충실한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독자들이 느끼도록 돕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도,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서도, 기쁜 일 앞에서도, 괴로운 일 앞에서도 충실하게 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내 마음을 흘러 지나가는 감정과 느낌을 바라보며 그 어느 쪽도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것, 즉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것”을 당부한다.
그래서 행복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날은 좀처럼 없음에도 특별할 것 없는 가족과의 대화에서, 아침 산책길의 햇살에서, 누군가 가볍게 건넨 인사에서 우리는 누구나 예고 없이 주어지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음을 일깨우며 일상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준다.
작가가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도 모자라구나. 별거 아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로 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구나.’ 독자들이 그렇게만 느낄 수 있어도 나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일상에서 발견한 행복을 그림과 함께 펼쳐 보인 글을 통해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나’를 보듬게 되고, 또한 스스로를 믿고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이 작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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