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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장보살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지옥이 텅 빌 때까지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살생업 지은 어머니 구제하려는
여인 광목의 서원에서 시작 돼
자신조차 저주하는 중생 곁에서
한 풀고 용서로 구원하는 보살

지장보살도. 14세기 전반, 견본채색, 239.4×130.0㎝, 일본 원각사(圓覺寺). ( ‘고려시대의 불화’ 시공사).
지장보살도. 14세기 전반, 견본채색, 239.4×130.0㎝, 일본 원각사(圓覺寺). ( ‘고려시대의 불화’ 시공사).

불안한 마음을 끌어안고 지옥의 길목에서 서성인다. 누군가 지옥의 한 가운데서 쓰라린 마음으로 절규한다. 그 지옥이 사후의 지옥이든, 살아서 받는 견딜 수 없는 지옥이든 말이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만든 지옥에 갇혀 자신을 옥죄며 삶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 괴로움은 한없는 좌절이요 무시무시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지옥 속으로 서슴없이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은 대원본존 지장보살(大願本尊 地藏菩薩)이라 부른다. 원력의 지존격인 보살마하살이 지장보살이란 얘기다. 지장보살의 삶과 본원을 다룬 경전이 ‘지장보살본원경’이다. 여기서는 다른 보살의 서원에는 끝이 있지만 지장보살의 서원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수많은 세월동안 지옥을 비롯해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구제하였음에도 그의 발원이 거듭되고 구원의 발길이 끊임없기 때문이다. 

지장이란 말을 보자. 그것은 땅[地]이 품은[藏] 가치와 공능을 일컫는다. 땅은 모든 것을 품고 저장하며 기른다. 모든 것들은 땅으로 돌아가고 땅에서 피어나고 자란다. 땅이 갖춘 공덕은 한량이 없다.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이 갖춘 공덕 또한 한이 없으며 저 티끌에서부터 우주 끝까지 차고도 넘친다. ‘지장보살본원경’에서는 지장보살의 희유하고 신비 가득한 무한한 공덕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모두 지장보살이 온갖 존재들에게 자신을 비우면서 베푼 본원의 결과였다.    

이러한 지장보살이 우리 곁으로 온 까닭을 살펴보자. 경전에서는 지장보살이 탄생한 연유를 여러 가지 인연담을 통해서 밝히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지장보살의 전생은 머나먼 과거세에 광목(光目)이라는 여인으로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그의 어머니가 어린 자라고기와 물고기를 많이 먹는 등 수천의 어린 생명을 살생하고 악행을 저지른 탓으로 지옥에 떨어져 고통에 시달린다. 이를 알고 광목은 그런 어머니를 구해내고자 부처님을 마음 깊이 떠올리고 공경하며 예배를 드린다. 그 결과 그의 어머니는 광목의 집 종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전생에 지은 살생의 업으로 13세에 단명할 운명을 타고 난다. 그래서 광목은 눈물을 흘리며 원을 발한다.

“저의 어머니를 지옥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인간세상에서 열세 살의 수명을 마친 다음에도, 다시는 무거운 죄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시여, 자비로서 어여삐 여겨 제가 어머니를 위하여 발하는 이 광대한 서원을 들어주옵소서….”

“제 어머니가 악도에서 영원히 벗어난다면, 저는 백천만억겁 동안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기필코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옥, 아귀, 축생의 몸에서 벗어나게 하겠나이다. 그리고 그렇게 죄업의 과보를 받는 모든 이들이 남김없이 부처를 이룬 연후에야 저는 정각(正覺)을 이루겠나이다.”

이렇게 원력을 품은 결과 광목은 훗날 지장보살로 화현한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서원에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그의 발원이 왜 지옥의 모든 생명을 구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지옥에서 고통 받는 어머니를 구제하는데서 출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발원의 깊이와 넓이가 이 세상은 물론 지옥 끝까지 찾아가 지옥이 텅 비기를 바라면서 지옥의 온 생명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치는 행위가 깊은 강처럼 흐르고 흘러갔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은 보름달 같은 얼굴을 하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지옥문 앞에 서 있다. 그의 손에는 6개의 고리가 달린 육환장이 들려 있는데, 육환장을 흔들면 그 고리소리에 지옥문이 열리게 된다.

지장보살은 7·7재나 천도재에서 그 존재감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7·7재에서는 망자가 지옥문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판관격인 시왕들에게 변호인으로 등장하여 그의 죄가 없다거나 형량을 감해 줄 것을 간청한다. 천도재에서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열고 들어가 지옥의 온 생명들을 그곳으로부터 이끌고 나온다.

그렇다면 지옥이란 무엇인가? 경전에서는 지옥을 끝없이 타오르는 불길로 가득한 곳이거나 이가 쉴 사이 없이 덜덜덜 거릴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추운 곳 등으로 그리고 있지만, 이것은 고통의 공간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상징적 묘사이다. 지옥의 실질적 의미는 끝없는 추락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이다. 또한 그곳은 좁고 어두우며 캄캄한 공간이다. 하늘도 구름도 들어오기 힘들며, 변화의 흐름도 멈춘 듯한 막다른 공간이요 막다른 시간이 지옥을 지배한다. 그곳에서의 사람들은 한없는 추락 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며 철저한 고립과 혐오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추한 모습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는 환영받지 못 할 자이다. 그는 자신으로부터도 저주받는다.   

이러한 지옥은 죽은 뒤에도 전개되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도 존재한다. 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서는 현재의 이 삶이 지옥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옥의 삶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삶이요, 험악하게 썩어 문드러져 냄새나고 내동이쳐진 나환자 같은 삶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를 보고 두려워하며 멀리 떠난다. 그렇지만 지장보살은 그들을 피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닦아주며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상처가 담긴 물을 마신다. 그들의 꽁꽁 닫힌 한과 분노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여 풀어주어 해방과 평화의 기쁨을 맛보게 해 준다. 그 순간 상대방은 지옥의 삶에서 걸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는 지옥에서 해방된다. 기적은 바로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사후 세계 지옥 중생들이 구제되는 과정도 지장보살이 그들의 한 맺힌 응어리와 언 가슴을 녹이는 과정 속에서 싹튼다. 지장보살은 그런 길을 저 먼 과거로부터 미래의 부처님이 오기 전까지 끝없이 가는 보살이다. 그래서 그의 원행은 끝이 없고 한계가 없다. 

널리 지장보살의 발원문으로 회자되는 글이 있다. 지장보살의 발원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온 생명을 끝없이 제도해, 마침내 그들이 모두 보리를 얻어,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저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발원과 본원력으로 우리는 그나마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을 편히 보낸다. 죽은 사람의 편안은 산자의 평화와 안심을 불러온다. 그 지장보살의 발원으로 세상의 지옥도 허물어진다. 용서받지 못할 자가 용서된다. 추락은 멈춘다. 언 가슴이 녹는다. 땅에서 꽃이 피어난다. 아. 지장보살님 원력 깊어라.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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