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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그리고 봉은사

퇴계·율곡 봉은사와 인연
배불론 주장했던 유학자
봉은사는 아픈 역사 현장

1569년 음력 3월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관직을 내려놓고 안동으로 내려간 해다. 고희를 바라보던 퇴계는 여러 차례 만류하던 선조의 허락을 받아 마침내 고향에 갈 수 있었다. 450년 전 경복궁을 나선 퇴계는 남한강을 타고 죽령을 넘어 안동 도산서원에 이르렀다. 800리에 이르는 그 길에서 퇴계는 벗과 제자, 지방관들을 만났으며 서로 시문도 주고받았다.

안동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퇴계의 마지막 귀향 일정에 맞춰 4월10일부터 21일까지 서울에서 도산서원에 이르는 350km을 걷는 행사를 마련했다. 여럿이 걸으며 퇴계의 시를 음미하고 삶과 사상을 되짚는 강연회도 여러 차례 갖는다. 출발 전날인 4월9일에는 봉은사 보우당에서 문화재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여해 이번 행사를 축하할 예정이다. 봉은사가 첫 출발지가 된 것은 퇴계가 한양을 떠나기 전 이 절에 머물렀던 인연에서 비롯됐다.

퇴계가 살았던 16세기는 성리학이 조선의 정치 이념으로 정착된 시기다. 그러나 불교로서는 말법시대에 가까웠다. 스님들은 군대에 강제 편입됐고, 불상과 범종은 살상무기가 됐다. 절에 놀러온 유생들이 고기와 술을 요구했고 사찰 재물을 약탈하거나 불지르는 일이 버젓이 자행됐다. 사찰에서 그들을 제소하면 되레 죄를 뒤집어쓰기 일쑤였고, 패악질한 유생이 호걸처럼 떠받들어졌다. 불교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할 불온한 사상이었으며, 스님들은 더 이상 조선의 백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때 유학자들이 그랬듯 퇴계도 강경한 배불론자였다. 그는 불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케 한다며 양명학과 더불어 불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단의 문자 같은 것은 전혀 몰라도 무방하다’며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도 유학 이외의 전적을 읽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이 같은 관점은 퇴계와 쌍벽을 이뤘던 대유학자 율곡 이이(1536~1584)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젊은 시절 어머니를 잃고 봉은사에서 불경을 읽은 뒤 입산까지 했던 그였지만 불교에 대한 비판은 혹독했다. 그의 불교 비판은 퇴계의 원론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율곡은 불교를 ‘사람을 경동케 하고 해치는 이적의 법’으로 규정했다. 퇴계 시(詩)에서는 개인적으로 알게 된 몇몇 스님들에게서 사리사욕 없는 청정한 심성을 확인하고 그러한 삶을 깊이 인정했지만 율곡에게서는 이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이러한 시대를 살았던 이가 봉은사의 허응보우 스님(1510~1565)이다. 명종의 모친으로 불교를 되살려야겠다고 발원한 문정왕후를 도와 보우 스님은 선·교 양종을 다시 세웠다. 또 승과를 부활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영웅 서산 휴정과 사명 유정 등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했고, 도첩을 꾸준히 발급해 정식 승려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조정대신과 유생들의 빗발치는 상소와 온갖 음해 속에서 이뤄낸 놀라운 성과였다. 단언컨대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걸어 들어갔던 보우 스님이 없었다면 불교의 법등은 조선시대를 건너기 어려웠다.

문정왕후가 서거한 뒤 보우 스님을 죽여야 한다고 전국의 유생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퇴계와 율곡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퇴계는 소문만으로 막대한 죄를 다투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했던 반면 율곡은 보우를 당장 유배 보내라는 상소를 올렸다. 율곡까지 나서자 명종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보우 스님은 제주에서 변협이라는 관리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이재형 국장

어쩌면 퇴계도, 율곡도 그 시대를 충실히 살아냈던 이들일 수 있다. 하지만 대석학이라는 그들조차 유교지상주의라는 시대의 자장(磁場)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것은 인간애를 강조하며 더 나은 사회를 꿈꾸었던 그들의 이상과도 맞지 않았다. 누구든 허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후유증과 희생이 너무 컸다. 봉은사는 조선불교가 감당해야 했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그렇기에 치유와 화해의 현장이 될 수 있는 곳도 바로 봉은사다.

mitra@beopbo.com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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