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고?’ 노스님께서는 항상 스님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차 한 잔을 내셨지요.”
한가득 찻잎을 넣은 다관에 미온수를 담아 진하게 우려낸 녹차, 그 차가 달다는 사람에게도 쓰다는 사람에게도 세 잔을 건네며 경봉 스님(1892-1982)의 일화를 들려주던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명정 스님이 저무는 매화 꽃잎을 따라 사바세계를 홀연히 떠났다.
평생 은사 경봉 스님의 가르침을 후학들에게 전하는 데 매진해 온 영축총림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명정 스님이 3월25일 오전 5시30분 통도사 극락암 원광재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7세, 법랍 60세.
명정 스님은 1943년 12월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해인사에서 출가한 후 1959년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0년 경봉 스님을 찾아가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 이후 1965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20여 년 동안 경봉 스님을 시봉한 스님은 영축총림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을 맡아 경봉 스님의 생전 가르침을 후학들에게 전하는 데 일생을 보냈다. 평생 선실에서 차를 가까이 했던 경봉 스님의 가르침은 명정 스님에게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정신으로 오롯하게 이어져 통도사 극락암은 현대 차인들에게 꼭 찾아야 할 차의 성지로 각인되었다.
특히 명정 스님은 경봉 스님의 글에 실린 이치를 후학들에게 전하는 출판에도 진력, 경봉 스님과 당대 선지식 사이에서 주고받은 서간문을 책으로 엮은 ‘삼소굴 소식’을 비롯해 ‘경봉한화’, ‘경봉일지’, ‘경봉대선사 선묵’ ‘경봉 스님 말씀’ 등의 발간에 힘썼다. 한역에도 조예가 깊은 스님은 경허 스님의 법어 등이 실린 ‘경허집’ 등 근현대 선사들의 가르침에 담긴 선의 요체를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수상집 ‘茶이야기 禪이야기’ 등이 있다.
영축총림 산중장으로 봉행될 명정 스님의 영결식은 3월28일 오전10시 영축총림 통도사 극락암, 다비식은 같은날 낮12시30분 통도사 연화대 다비장에서 진행된다. 스님의 분향소는 평소 스님이 항상 머물던 통도사 극락암 원광재에 마련됐다.
한편 경봉문도회(회장 무애 스님)는 명정 스님의 장례 일정과 관련하여 일체 조의금과 조화는 사절한다고 밝혔다.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483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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