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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김동식씨의 무학

기자명 김정빈

“고통과 고통 멸하는 지혜는 세상 자체에 있다”

20년 전 중학교 1학년 마친 뒤 
학교라는 틀 안서 배운적 없어
10년 공장생활 후 글쓰고 싶어
SBS라디오에 보낸 글 채택돼
글쓰기 자신감 갖고 창작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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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퇴사 후 반지하서 작품써
1년반만에 원고지 1만장 350편
유명한 소설가 소개 출판 인연
두달 만에 5만권 책 팔려 나가
소설 소재는 각양각색 사람들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책을 낸 작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동식씨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김동식씨는 20년 전 중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운 적이 없는 작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학교가 싫어서 공부를 그만뒀다. 학교 공부를 별로 잘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선생님들은 학생을 야단친다. 그게 싫었다. 아무도 나를 야단치지 않는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스무 살 때 서울 성수동에 있는 한 주물공장에 들어갔다. 500도가 넘은 아연을 국자로 떠서 금형에 부어 넣는 일을 맡았다. 그가 부어 넣은 아연은 단추나 허리띠 장식 따위로 변신해 세상으로 나갔다. 첫 월급으로 130만 원을 받았다.

공장 생활을 10년 넘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이라는 게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었고,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서 ‘글 잘 쓰는 법’이라는 키워드를 써넣어 보았다.

짧은 글을 써서 SBS 라디오 ‘두 시 탈출 컬투쇼’에 보냈더니 채택이 되었다. 약간 자신감이 생겼다. 이야기를 지어 온라인에 올렸다. 맞춤법도 안 맞는 엉터리 문장이었는데도 칭찬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로 글쓰기 방법에 대해 좋은 조언을 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것을 참고하며 연습을 하는 동안 글쓰기 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향상되었다.

공부에도 욕심을 내어 검정고시 과정을 밟았다.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포털 사이트에 올린 그의 글은 점점 틀을 갖추게 되었고, 반응이 점점 좋아졌다. 그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2016년에 공장을 그만두었다. 

반지하 방에서 이야기를 지어냈다. ‘오늘의 유머’ 코너에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짧은 소설을 지어 올렸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아졌고, 그래서 힘이 났다. 쓰고 또 쓰는 1년 반 사이에 이야기 350편이 생산되었다. 원고지로 1만 장, 장편소설로 쳐도 10권 분량이나 된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그의 소설을 출판사에 소개했다. 출판사 대표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문단 데뷔’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족보 없는’ 소설가의 책 세 권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두 달 만에 5만 권이나 되는 책이 팔려나갔다. 김동식씨는 깜짝 놀랐다. 3800만원이나 되는 큰돈이 인세로 입금되었기 때문이다. 문단 데뷔 과정을 생략한 채 그는 스스로 소설가라는 세계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만의 족보, 자신만의 가문을 창시한 셈이 되었다. 

그 ‘큰일’에 가장 큰 자산이 되어준 것은 PC방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다. 조폭, 노래방 도우미 여인, 떼인 돈을 받아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사람,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 온몸을 문신으로 도배한 사람 등등.

보기만 한 게 아니라 당하기도 했다.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였는데, 돈을 빌려 간 ‘형’은 얼마 후 미안하다면서 또다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주며 어울렸다. 차츰 인생이 보였다. 답이 보였다기보다는 인생의 여러 양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글로 풀어보았다. 생각나는 대로 썼다. 그러다 보니 플롯이 없는 글, 주제가 불명확한 글, 투박한 글, 두루뭉술한 글이 되는 때가 많았다. 내용 또한 상상력이 극치까지 치닫는 것들이 많았다. 게임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기이한 사람, 실제로 게임 속의 요괴들을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 

학교가 아닌 세상에서 공부한 사람,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사람, 그것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해가고 있는 사람, 지금은 예전에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 공부라는 것은 싫더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김동식씨는 오늘도 이야기를 짓기 위해 키보드 앞에 앉는다.

무학(無學)이라는 말이 세상에서는 하천한 의미로 쓰이지만 불교에서는 그 반대다. 세상 사람들은 ‘무학’이라는 말을 ‘배운 바가 없음’, 또는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지만 초기불교에서 이 말은 배울 것을 다 배워 마친,  그래서 ‘더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70~80% 정도 되고, 중고등학교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100% 가까운 사람들이 공부를 마친다. 하지만 40년 전으로 돌아가면 대학 진학률은 20~30% 정도에 불과했고,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었다.

다시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로 가면 학벌 수준은 더 낮아진다. 정규 대학이라곤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밖에 없었고, 오늘날 명문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연세대학교조차도 연희전문대학이었던 시절이니, 박사는커녕 석사, 학사 자체가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큰 나라로 건너가 명문 중의 명문 대학인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공부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단 3년만에 마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돋보였을지는 능히 짐작이 간다. 그 돋보임에다 능란한 정치술까지 동원함으로써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불교는 학벌을 문제 삼지 않는다. 판사를 지냈다는 경력 때문에 효봉 큰스님을 우러러보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어느 스님이 어느 유명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점 때문에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불교 집안에서는 그런 ‘세상 박사’보다는 ‘깨달음 박사’를 더 높이 우러러본다.

그 깨달음 박사가 곧 무학이다. 깨달음 박사를 지향하는 불교인이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은 ‘세상 지식’이 아니다. 부처님은 “나는 고(苦)와 그 지멸(止滅)만을 말한다”고 말씀하셨다. 고와 그 지멸을 다 알면 깨달음 박사이다. 그 길은 정규 교육 시스템이 아니라 세상 자체에 있다.

그 세상에서 김동식씨는 소설을 읽어냈다. 하지만 부처님, 또는 수행하는 불제자에게 세상은 그 세상 말고 진짜 세상이 있다. 오온. 우리의 심신 자체가 이미 세상이다. 한 사람의 불제자로 나는 그 세상에서 ‘고’를 보아내야 한다. ‘그 지멸’을 성취해야만 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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