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 무한 유한-중

부처가 아니라면 전생 기억 못하는 것은 축복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 있다면
부러워할 게 아니라 괴로운 일
기억의 유한성은 엄청난 축복

유리수란 12/35와 같이 분자와 분모가 모두 정수인 분수를 말한다. 유리수의 집합은 자연수의 집합보다 크지만, 유리수의 개수는 자연수의 개수와 같다. 그 증명은 다음과 같다. 유리수 중에 분자와 분모의 합이 2인 것이 유한개밖에 없다. (즉, 1/1이다.) 여기에 번호를 붙인다. (1번이다.) 분자와 분모의 합이 3인 것도 유한개밖에 없다. (즉, 1/2와 2/1이다.) 여기서 그 다음 번호들을 붙인다. (2번, 3번이다.) 분자와 분모의 합이 4인 것도 유한개밖에 없다. (즉, 1/3, 2/2, 3/1이다.) 여기서 그 다음 번호들을 붙인다. (4번, 5번, 6번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유리수에 번호를 붙일 수 있다. 그래서 유리수의 개수는 자연수의 개수와 같다.

하지만 실수에는 이런 식으로 번호를 붙일 수 없다. 그 논증은 다음과 같다. 귀류법(歸謬法)을 이용한다. 즉, 번호를 붙일 수 있다고 가정을 하고 모순을 이끌어낸다. 만약 번호를 붙일 수 있다면, 실수의 일부분인 0과 1 사이의 모든 실수에도 번호를 붙일 수 있다. (모두 0.abcd… 꼴이다.) 첫 번째 수의 소수점 이하 첫 번째 자릿수를 a1, 두 번째 수의 소수점 이하 두 번째 자릿수를 a2,…, n번째 수의 소수점 이하 n번째 자릿수를 an이라 하고,…, a1’을 a1과 다르게 0에서 9중에서 아무거나 하나 잡으면(예를 들어 3이면 4를 잡는다),…, an’을 an과 다르게 잡으면,…, 이런 식으로 끝없이 잡으면 이것들을 이용해 만든 소수 0.a1’a2’…an’…은 0과 1 사이의 수이지만, 위에 열거한 수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수점 이하 n번째 자릿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집합이 되었건 간에 부분집합들의 개수는 원 집합의 원소의 개수보다 더 크다. 비교적 그 증명이 쉽다. 거꾸로 같다고 해보자. 그리고 어떤 모순이 생기는지 보자. 원소 a에 대응되는 부분집합을 s(a)라 하고, B를 s(a)에 포함하지 않는 a들의 모임이라 하자. 그리고 B를 s(b)라 하자. 즉 B가 원소 b에 대응된다 하자. 그리고 B에게 b를 포함하는지 안 하는지 물어본다. B=s(b)가 b를 포함하면, b는 B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B=s(b)가 b를 포함하지 않으면, b는 B에 들어간다. 이 역시 불가능하다.

이처럼 어느 경우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집합의 부분집합들의 개수가 원 집합의 원소들의 개수와 같다고 한 가정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집합이든지 그 부분집합들의 개수는 원 집합의 원소들의 개수보다 크다.

옛날 사람들은 유한한 우주를 생각했지만 현대인들은 무한한 우주를 생각한다. 무한개의 우주가 존재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미래 사람들은, 현대 수학자들이 그리하듯이, 그 무한개를 구분할지 모른다. 가산(countable 셀 수 있는 즉 자연수로 번호를 붙일 수 있는) 우주인지, 불가산(uncountable) 우주인지 구분할지 모른다.

무한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다음의 실화를 보라.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다. 수만 개로 이루어진 긴 단어열과 수열을 기억했다. 단어나 수를 보면 색깔이 떠올랐다. 일종의 공감각(共感覺) 현상이다. 그는 이걸 이용해 기억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그는 망각할 수 없어 고통을 받았다. 기억이 제멋대로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기억들은 상상으로 부수고 태워도 다시 살아났다. 단어와 수 하나하나마다 그에 연상된 시각적 이미지가 떠올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이미지들로 와글와글했다. 후에 그는 기억에 상상의 흰 커튼을 덮는 방법으로 가까스로 자동적인 기억 분출을 멈출 수 있었다. 부처가 되기 전에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축복이다. 즉 기억이 유한한 것은 축복이다. 삶이 고라면 그 무한한 전생에 겪은 고를 다 기억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통일 것이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닥치는 PTSD(외상후증후군)일 것이다. 이 점에서 망각은 축복이다.

무한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칸토르(Cantor)였다. 당시 수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사기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사후에 신원(伸冤)되었고, 현대 수학은 그가 발견한 집합론 위에 세워져 있다. 힐버트는 이걸 칸토르가 인도한 천국이라고 했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