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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기 또는 거기, 차안과 피안  ② -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노란 개나리도, 붉은 진달래도 각자 아름다울 뿐” 

그날밤 꿈에 어머니 찾아갔네
나비가 되어 저세상 구경하고 
날아서 간 수미산 닮은 마을선 
어린아이 같은 원담 노스님도
직접 농사짓는 벽초 노스님도
손주처럼 대해 주셔 행복했지
​​​​​​​ 
아버님도, 어머님도 그곳에선 
이승보다도 더 행복해 보였네
여기든 거기든 무엇이 중한가
어디서든 행복하게 살면 그만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어머님께서 하늘로 돌아가신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불교신문 ‘수미산정’ 코너에 ‘사모곡(思母曲)’이란 칼럼에서 우리 어머님의 이름처럼(玉蓮) 묘지 뒤의 산목련으로 다시 살아오실 거라고 쓴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향집 뒤란의 아버님과 합장(合葬)한 묘지를 찾아갔다.

어느 봄날, 달 밝은 날에 묘지 뒤편에는 못 보던 산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만발한 것이 어머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듯했다. 마치 봄에 내리는 흰 눈처럼 바람에 흩날려 묘지 위와 내 가슴속에 소복이 쌓여만 간다.

당대의 시선인 이태백의 시 가운데에 “달빛은 희고, 눈빛 또한 희어, 온 천지가 하얗게 덮였는데 산 깊고 밤 깊은 날에 나그네의 수심도 깊어라(月白雪白天地白 山深夜深客愁深)”라고 노래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이 지금, 바로 여기의 내 마음과 같음이라. 묘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님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다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다가 문득 꿈속에서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저 세상 구경을 하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님을 그리는 내 마음이 하늘을 감동 시켰던지, 아니면 무언가 나를 일깨우려는 의도가 있었지 않았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마치 단테의 ‘신곡’처럼 누군가의 안내도 없이, 내 모습 그대로가 아닌 나비의 몸으로 저승구경이라니 꿈속이 아니라면 이 어찌 가능이나 하겠는가? 어찌됐든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되었듯이(胡蝶之夢)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리운 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즐겁고 행복했다.

한참을 산 넘고 물 건너 날아가다 보니 복숭아꽃과 살구꽃, 산목련과 연꽃이 아름다운 한 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정토나 극락 같기도 하고, 천상세계나 혹은 무릉도원 같기도 하였는데, 그냥 어떤 신비한 곳이라고 해 두었으면 한다.

오랜 비행에 지쳐 꽃술에 내려앉아 잠시 휴식도 하고 꽃술도 맛보며 마을을 둘러본다. 온갖 꽃 속에 파묻힌 이 마을은 그림 같은 풍경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 제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책이나 사진으로 보았던 알만한 유명한 이들과 내가 보았던 이들도 여럿 보이는 것이었다.

우선 이 마을의 전체 모양새는 수미산을 닮은 모습이다. 마치 머털 도사가 살던 동네와 비슷한 모양이다. 이 모든 곳을 다 돌며 상세히 단테의 ‘신곡’처럼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 중에 내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사는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업경대(業鏡臺)’ 옆에 ‘보경대(報鏡臺)’를 통하면 지금 무슨 과보를 받아 어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먼저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덕숭총림 방장이셨던 원담(圓潭) 노스님을 뵈러 갔다. 노스님께서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모습으로 만공 노스님을 다시 만나 시봉하고 계셨다. 이따금 천상에 누각이 새로 세워지면 현판이나 주련 등을 휘호하는 일을 도맡아 하시면서 말이다. 벽초 노스님은 지금도 직접 누대를 세우는 일의 도감을 맡거나, 소도 키우고 농사일을 하면서 그리 지내신다.

은사이신 법장(法長) 스님은 그 곳의 모든 행정을 총괄하시며 불사를 진두지휘하고 계셨다. 그리고 가끔은 티베트 수미산이나 히말라야 설산으로 순례여행을 다니시며 소일하고 계셨다. 무엇보다 당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시고 건강과 활력이 넘쳐 보여 나 또한 행복한 마음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무위당 진관(眞觀) 노스님도 어찌 지내시나 궁금해 찾아보니, 구품 연화대에 올라 연꽃 속에 맑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계셨다. 내가 “노스님!”하고 날아드니 마치 손주인 줄 아는 듯이 환한 미소로 손등 위에 올려놓고는 그윽하고 아름다운 미소로 함께해 주시었다. 그 옆에 우리 흥륜(興輪) 노스님께서도 “우리 스님, 이제 천애고아라서 우짜노?”하는 측은한 눈빛과 고운 미소로 그리 말씀하시는 듯하였다. 그 곁에 가사원 사무국장 하던 태연 스님과 직할 사무국장 하던 명선 스님도 옛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부모님을 뵈올 차례이다. 심호흡 한번 하고는 두 분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우려와는 달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승에서보다 더 다정하고 금슬 좋게 살아가시는 듯하다. 무엇보다 가슴에 묻었던 두 누이를 만나 오순도순 살아가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자식 된 나로서도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분 부모님을 떠나오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날개 짓을 하면서, 나 또한 먼 훗날 이곳으로 와서 함께 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무엇이든 간절히 마음으로 염원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心想事成)라고 하듯이, 꼭 그리 될 거라고, 그런 날이 반드시 올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두 분의 곁을 차마 떨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마음이 허허롭고 아쉬움과 그리움이 다시금 몰려든다. 내가 나비가 되었던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되었던지 알 수가 없다. 어느 곳이 이승이고, 어느 곳이 저승이었는지도 그조차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여기가 거기이고, 거기가 또한 여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여기와 거기 사이일 수 없는 어느 곳을 다녀 온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든 거기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 두 곳에서 나름대로 각자 수행하듯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는지. 여기와 거기든, 차안과 피안이든 모두 이 한 마음 속에(一切唯心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곳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어디서든 평안하시길…. 다시 그 어느 곳에서든 우린 또 만날 수 있으리라. 뜰 앞에 개나리는 노랗고, 진달래는 붉고, 산목련은 희고, 소나무는 푸른 빛으로 각자 아름답기만 하다. 그 모든 것을 가슴에 품은 채, 지금, 바로 여기에서(今此) 당신들을 그리워만 한다. 그리고 당신들의 삶과 수행에 부끄럽고 욕되지 않게 그렇게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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