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대학교박물관과 앞뜰에는 어느 절에서 가져왔는지 원 소재지를 알 수 없는 석조비로자나불상 5구가 놓여 있다. 대부분 출처 알 수 없고 파손된 이 비로자나불상들은 경상북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놓은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그중 경북대학교박물관 안에 전시중인 사암제 비로자나불상은 그나마 소장경위가 알려져 있다<사진 1>. 전하는 자료에 의하면, 불상의 대좌는 1936년 6월 울산 동면 절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 고미술 수집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소장하고 있다가 대구시립박물관으로 옮겼으며 한국전쟁 이후 박물관이 소실되면서 경북대학교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후 경북대학교박물관 앞뜰에 놓여 있었던 출토 미상의 석조비로자나불상과 한 짝이 되어 현재 전시중이다. 그래서인지 대좌는 상단부가 파손되어 없어졌지만 불상에 비해 큰 편이어서 전체 비례가 맞지 않는다(‘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사진자료 소개’, ‘신라문물연구’6·7호, 2014).
이 비로자나불상은 특이하게 무른 사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전반적으로 마멸이 심하고 몸 한가운데에는 절단되었던 것을 이어붙인 시멘트 흔적이 눈에 띄게 남아 있다.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를 크게 표현하여 부처라기보다는 현세적인 이미지가 강한 느낌을 준다. 머리는 한쪽이 파손되었지만 나발이 큼직하며 혹과 같은 작은 육계가 놓여 있다. 넓은 어깨와 당당한 가슴 위로 한쪽 어깨에만 걸친 얇은 옷이 덮여 있는데, 몸에 완전히 밀착되어 신체의 양감을 드러내고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으로 오른손의 둘째손가락을 잡고 있는 지권인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지권인 형태와는 다르게 손의 좌우가 바뀌어 있다. 넓은 어깨와 건장한 신체, 몸에 밀착된 얇은 법의의 표현, 단순한 조형감에서 오는 위엄감 등은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양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의 3단으로 구성된 연화대좌로 상대석과 하대석에는 연꽃잎이 화려하게 조각되었고 중대석에는 신장상과 괴수가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이런 형식은 통일신라 후기 비로자나불상의 대좌 중대 또는 하대석에 나타나는 사자상의 표현과는 확실히 다른 특징이다.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전시중인 또 다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역시 오구라가 소장했던 것으로 1958년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원래 봉안처는 알 수 없다<사진 2>.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비로자나불상이다. 어깨는 넓은 편이나 볼륨감 없는 가슴과 빈약하게 처리된 다리 등에서 왜소하고 위축된 듯한 모습이다. 광배와 팔각연화대좌에는 화려한 문양이 가득 장식되어 있는데 특히 대좌의 중대와 하대에 두광을 가진 보살입상과 사자(獅子)가 조각되어 있어 주목된다. 대좌에 사자 등장하는 것은 비로자나불상의 도상적 특징 중 하나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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