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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배창호의 ‘꿈’

인간 욕망의 허망함 깨닫게 한 일장춘몽 인생사

‘삼국유사’ 조신 설화 배경으로
춘원 이광수 집필 소설 영화화
조신 스님이 깨달음 얻는 내용
꿈 속에서 파계‧부부의 연 맺고
가난‧이별 후 제행무상 깨달아

배창호 감독의 ‘꿈’은 조신 스님이 일장춘몽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사진은 ‘꿈’ 캡쳐.

서양에서 꿈은 이루지 못한 소망을 대체하는 무의식의 얼굴이다. 동양에서 꿈은 현실의 덧없음을 설득하는 교육의 장이다. 장자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을 통해, 현실은 어쩌면 나비가 꾸는 꿈일 수도 있으며 우리는 꿈 속에 나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불교에서 꿈은 ‘마치 불로 모든 초목을 태워서 그 자취까지 없애도록 하는 것’과 같이 일체 무상함을 일깨우는 경구로 소환된다. 배창호의 ‘꿈’은 제행무상을 깨닫게 되는 조신의 꿈으로 요약된다. 

이 작품은 삼국유사의 조신 설화를 배경으로 춘원 이광수가 집필한 소설이 원작이다. 1967년 신필름의 신상옥 감독이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불교영화 ‘꿈’을 제작하였다. 신필름과 ‘꿈’은 인연이 깊으며 신상옥은 ‘꿈’을 두 번이나 제작했다. 첫 번째는 1955년 자신의 아내인 최은희를 달례로 캐스팅한 ‘꿈’이다. 10년 후 감독은 총애했던 배우 신영균을 조신으로 캐스팅하고 김혜정이 달례아씨로 열연한 ‘꿈’을 다시 제작하였다. 그리고 신필름의 스타 감독인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날’에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배창호 감독이 ‘꿈’을 세 번째로 연출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꿈’은 가장 많이 제작된 불교영화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고 ‘동승’은 두 번 제작되어 그 뒤를 이었다.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전성기를 통과하고 하향곡선으로 기울어질 때 ‘꿈’의 카드로 재기를 시도했다.

‘꿈’은 범신필름의 계보에서 세 번의 제작된 작품의 기록을 남겼지만 한국영화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전의 텍스트가 이후의 텍스트에 영향을 주는 관점에서 볼 때 ‘꿈’은 기원의 영화로 다른 작품에 그림자를 남겼다. ‘꿈’이 가장 근접거리에서 영향의 흔적을 남긴 작품은 이명세의 ‘개그맨’이다. ‘개그맨’과 ‘꿈’은 주제적으로 일란성 쌍둥이에 가까우며 서사적으로는 좌우를 합하면 퍼즐이 맞는다. 

‘꿈’은 조신이 달례 아씨를 흠모하면서 꾸는 꿈의 이야기가 중심이며, 깨어난 이후는 거의 사족에 불과하다. 승려 조신은 정혼 축원을 위해 절에 방문한 태수의 딸 달례를 흠모하게 된다. 큰스님은 조신에게 달례의 미모를 넌지시 떠보나 조신은 썩은 나무토막 같다고 시치미 뗀다. 하지만 큰스님이 법당을 나서자 그는 부처님 앞에서 “단 하루라도 좋으니 달례 아씨와 연분을 맺게 해주세요”라는 축원을 여러 차례 드린다. 

수행자가 부처님에게 파계를 허락해달라는 장면은 불교적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꿈의 세계, 욕망의 전시라는 측면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조신은 꿈을 통해 달례 아씨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서라벌 제일의 미인인 달례는 화랑 모례아손과 정혼을 하였다. 조신은 달례를 만나기 위해 계곡을 건너서 그녀의 집에 당도하여 욕실에서 목욕을 하는 그녀의 몸을 엿본다. 욕조 안에서 달례는 “인생은 꿈같음을 알고 있느냐”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이날 조신은 그만 파계를 하고 만다. 조신은 새벽에 절로 되돌아가지만 달례아씨는 폐물을 들고 조신을 따라 나섰고 그들은 결국 가정을 이루게 된다. 조신은 가난과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삶의 고통을 체험하고 절로 되돌아와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조신은 꿈에서 깨어난다. 첫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가 디졸브로 맞물리면서 수미상관된다.

부처님은 결국 조신의 염원에 꿈으로 응답하신 것이다. 그는 꿈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망상인가를 깨닫게 되어 번뇌 망상으로부터 벗어난다. 조신은 망상에서 벗어나 ‘두견새가 흰 명주에 피를 토한 것처럼 아름다운’ 달례 아씨의 방문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수행정진에 임한다.

이명세 감독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함께 집필하였다. 그리고 그의 첫 충무로 입문작인 ‘개그맨’은 조신으로 연기했던 안성기를 주인공으로 하여 삼류 개그맨이 꿈꾸는 한 낮의 꿈 이야기를 담아냈다. 야간 업소에서 일하는 개그맨 이종세(안성기 분)는 이발소의 주인 문도석(배창호 분)을 만나 영화 출연을 제안한다. 가수를 꿈꾸는 오선영(황신혜 분)과 그들은 은행 강도를 자행하고 도피의 긴 여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 모든 모험과 이야기는 이종세가 문도석의 이발소에서 잠깐 동안 꾼 꿈이었다. 시작은 현실에서 출발하고 중간은 대부분 꿈으로 채워지며 마지막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환구조의 서사에서 ‘꿈’과 ‘개그맨’은 동일하다. 출연한 배우도 조신과 이종세를 연기한 안성기, 달례와 오선영을 연기한 황신혜로 동일하며 ‘꿈’을 연출한 배창호 감독까지 출연하여 ‘꿈’의 현대판으로 수렴된다. 

인생은 한갓 부질없는 꿈에 불과하다는 주제가 닮았다는 점이다. 차이는 ‘꿈’이 설화를 바탕으로 불교의 깨달음을 강조했다면 ‘개그맨’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토대로 삼류 개그맨의 백일몽에 기울어져있다.

두 작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허망함을 지향하는 텍스트의 대표성을 지닌다면 한참 후에 제작된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도 계보를 잇는다. 이 영화는 청정한 불교와 거리가 있지만 주인공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을 통해 주제적으로 거리를 좁힌다. 주인공이 나레이션을 할 때 1947년 이광수가 집필한 ‘꿈’이 연상되고 1990년 배창호가 연출한 ‘꿈’의 조신은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이병헌 분)로 계보를 이어간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여기서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이라는 제목의 비밀과 주제를 이해하게 된다. ‘달콤한 인생’과 ‘개그맨’은 서로 다른 장르이지만 ‘꿈’의 우물에서 발원된 ‘인생은 일장춘몽이니 헛된 망상에서 부디 자유롭기를’바라는 전언으로 가족이 된다.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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