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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돌을 키우는 사람

기자명 임연숙

우주 무한시간 속 12연기 이미지화

숯·황토 등 갈아서 미술 재료로
작가 경험·삶의 관조 작품 조성
작품과정서 불교 연기설 녹여내

한생곤 作 ‘돌을 키우는 사람’, 41×53cm, 캔버스에 안료 홍합껍질가루, 2019년.갤러리 담 제공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게 거의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때 한생곤 작가에 대한 이미지는 문인으로 치면 방랑시인 같은 느낌이었다. 작품도 헐렁하다고 해야 하나,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억지로 무엇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작가의 개인전 소식을 접하고 만난 작품들은 훨씬 깊이가 있었다. 시간과 연륜의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무조건 시간이 흐른다고 작품의 깊이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연륜은 작가가 열심히 치열하게 자기 고민을 해온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초기의 작품들도 자연을 닮은, 혹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 해왔지만, 오랜만에 만난 작품은 불교에서 우주의 무한시간 속에 생성과 소멸을 말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던가 12연기를 이미지화했다. 거친 바탕이지만 푸근한 느낌의 배경에 편안한 표정의 한 인물이 그려진 작품이 인상 깊다. 마치 해탈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모아이 석상을 연상하게 한다. 

현재, 작가는 사천에서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과 삶에 대한 관조, 삶과 우주의 이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최근의 작품경향이다. 작품 전체가 주는 미세한 입자와도 같은 느낌은 그저 촉각적인 효과만을 주기 위한 기법의 의미를 넘어선다. 작가는 많은 자연의 물질을 갈아서 직접 재료를 준비한다. 소나무껍질, 숯, 커피가루, 소뼈, 황토 등을 갈아서 작은 입자화하여 그림의 재료로 사용한다. 버스로 방방곡곡을 방랑하던 시절 화방의 재료가 아닌 자연에서의 재료로 한번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자연의 재료는 작가에게 다시금 붓을 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연기(煙氣), 그러니까 영어로 스모크(smoke)를 그렸던 것이 시작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들판에서 일하시고 난 다음 남은 것들을 태우시는 모습이 먼저 있었다. 그런데 연기와 연기의 발음이 같아서 연상작용으로 개념이 이동하였다. 유(有)에서 생(生)이 연결된 것이다. 다시 말해 스모크의 연기가 먼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12연기의 연기라는 개념이 다시 전생(轉生) 한 것이다. 일단 나면 노사(老死)는 필연이다. 늙고 죽는다는 것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흐름을 대표하는 말이다. 그래서 ‘흐르다’는 동사를 사용하였다. 연기와 연기, 이 말은 묘하게도 의미로나 이미지로나 잘 섞인다.”(한생곤 개인전 작가노트 중)

모든 우주의 만물에는 생과 소멸이 있다. 사람도 그렇지만 그림도 그렇다. 작가도 그렇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들은 어떤 깨달음으로 작품화되어 끝과 시작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드로잉이나 에스키스를 통해서 마음의 상을 일으키고 그런 행위를 통해 형상을 구체화하고 어떤 재료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정하는 과정을 통해, 혹은 그 재료를 준비하고 작품을 만든다. 이러한 과정, 끊임없이 보고 느낀 것을 화가의 눈과 생각과 손을 통해 작품을 생성시키는 과정에 불교의 연기설을 잘 녹여내고 있다. 돌을 키우는 사람이라는 제목에도 많은 의미가 해석된다. 돌을 갈고 녹여내는 작가의 모습이자, 돌을 품고 있는 어떤 사람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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