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후 미국 반출된 신흥사 경판 65년 만에 돌아왔다
한국전쟁 후 미국 반출된 신흥사 경판 65년 만에 돌아왔다
  • 임은호 기자
  • 승인 2019.03.27 18:55
  • 호수 14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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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후반 제작된 목판 중 1점
천도의식 등 기록된 불교 중요자료
전쟁 직후 미군 장교가 들고 귀국
“성보 반출 마음 편치 않아” 반환
제반문 87장 앞면.

한국전쟁 정전 직후인 1954년 미군이 가져간 설악산 신흥사(주지 우송 스님) 불교 경판이 65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설악산 신흥사는 3월26일 “3월18일 미국 시애틀에서 미군 출신 리처드 락웰(92)씨로부터 ‘제반문(諸般文)’ 목판 중 마지막 부분 1점을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신흥사 경판의 미국 반출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 해병대 중위로 복무한 락웰씨는 한국에 파병된 후 1954년 10월 수색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신흥사에 들렀다. 전쟁으로 황폐화한 신흥사 경내를 살펴보다 파괴된 전각 주변에서 경판 1점을 수습한 그는 그해 11월 경판을 들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신흥사 경판을 자택에 보관하다 중요한 문화재라고 판단한 락웰씨는 유물을 한국에 돌려주고자 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해 1월, 자신이 한국에 장교로 재직 중이던 1953∼1954년 직접 촬영한 슬라이드 사진 279점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경판도 함께 돌려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제반문 88장 뒷면.

박물관은 해외 문화재 조사와 환수 업무를 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에 경판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락웰씨가 이메일로 보내온 경판 사진을 분석하고 현지 직원을 시애틀로 파견해 경판 유출 과정을 파악하고 진품임을 확인했다.

지난 2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부터 유물 반환 의사를 전달받은 신흥사는 인천 능인사 주지 지상 스님을 미국으로 보냈다. 지상 스님은 미국 내 신흥사 불화 환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함께 3월18일 락웰씨 자택을 방문해 조건 없이 경판을 자진 반환한 것에 대해 감사패를 전달했다.

좌로부터 인천 능인사 주지 지상 스님, 리차드 락웰씨,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이번에 돌아온 신흥사 경판은 17세기 중후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판 크기는 가로 48.2㎝·세로 18㎝이며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라는 게 신흥사 측의 설명이다.

제반문은 사찰에서 행한 일상의 천도의식과 상용(相容) 의례를 기록한 문서다. 신흥사 제반문 경판은 88장(44점)이 존재했다고 전하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됐고 지금은 14점만 남았다. 락웰씨가 반환한 목판은 마지막 부분인 87∼88장에 해당하며 ‘연옥(連玉)’과 ‘김우상양주(金祐尙兩主)’라는 시주자와 관련된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제반문 경판은 보존 상태를 점검 후 3월26일부터 설악산국립공원 소공원 내 신흥사유물전시관 1층에 전시 중이다.

신흥사는 “제반문 경판은 17세기 조선시대 인쇄술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당대 경전 간행 과정과 스님들의 생활상, 불교의례, 인쇄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며 “국가적 혼란기에 국외로 나간 성보문화재의 환지본처(還至本處)를 위해 사부대중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리차드 락웰씨가 촬영한 1954년 10~11월 경 폐허가 된 신흥사 경내 모습

[1483호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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