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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의 현대적 의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오계가 있다. 신라의 원광법사는 사회적 현실에 맞추어 화랑에게 새로운 세속오계를 수여했다. 대승불교에서는 ‘범망경’의 출재가자들을 위한 계와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의 삼취정계가 잘 알려져 있다. 남산율종의 도선(道宣)율사 또한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서 계법(戒法)・계체(戒體)・계행(戒行)・계상(戒相)으로 계율의 의미를 설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계의 근본 뜻은 변함이 없지만, 시대와 환경을 따라 새롭게 제정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불타 재세 시에도 계율은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계율은 새롭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계율을 현실적으로 해석하여 근본을 드러내는 것도 좋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필자는 재가자의 삶의 기본이 되는 오계를 자본주의, 국가, 과학이 주도하는 이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해석의 기준은 생명, 자유, 평등, 정의, 평화 등 역사를 통하여 피눈물로 확립한 인류의 가치에 근거하는 것이다. 초기불교로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오는 이 오계를 현실화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해 우리 불자들의 적극적인 대응지침으로 삼자는 의도도 있다. 

첫째, 산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계는 이 이상의 해석 여지는 없지만,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을 죽이는 일을 행하지 않고, 막는 일에까지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세계 모든 전쟁을 부정하고, 전쟁에 동원되는 군대, 군수물자, 무기의 생산·유통·판매·보유를 금지하는 일에 나서는 일이다. 2차에 걸친 세계대전과 수많은 국지전쟁을 통해 그 참상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정의로운 전쟁은 없음을 인식하고, 전쟁과 관련한 모든 것을 부정하며 능동적으로 막음으로써 세계평화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둘째,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불투도는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언급한 것처럼 지구의 환경문제에 새로운 해석을 가할 수 있다. 즉 후손들이 써야 할 자원마저 다 써버림으로써 그들의 몫을 훔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광물, 공기, 물, 대지 등 공공재의 활용,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국가에 대한 견제, 그리고 생산·유통·소비에 의거한 자본주의 경제의 정의(正義) 확립을 위한 준거가 될 수 있다.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불사음은 최근의 미투운동이 보여주듯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차별·폭력을 막는 것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특히 가진 것 없는 자,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 어린이·여성·노인·소수자 등 약자에 대한 보호와 그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하는 것이다. ‘능가경’에서 중생구제를 위해 인간의 모든 고통을 스스로 뒤집어 쓴 불보살들을 대비천제(大悲闡提)라고 하는 것처럼 오히려 이들은 우리의 자비심을 시험하는 눈물 흘리는 불보살의 화신이다.

넷째,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는 불망어는 인류가 진화하는 데에 디딤돌이 된 모든 가치를 승화시키고 실천하며 제도화하는 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구의 문제는, 해법은 나와 있는데 누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불교가 뛰어난 것은 나로부터 변화하겠다는 수행에 있다. 언어에 현혹되지 않고 행동으로써 삶과 문명의 한계를 돌파하는 일에 이 계를 적용해야 한다. 언어가 난무하는 소셜미디어의 정사(正邪)를 가리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 다섯째, 술을 마시지 말라는 불음주는 최근 일련의 사회적 사건에서 보듯 마약과 같은 약물에 중독된 사회를 구제하는 계로 해석되어야 한다. 앤 윌슨 섀프가 쓴 ‘중독사회’(강수돌 옮김)에서는 문명의 한계를 개별 중독자들처럼 우리 인간이 모든 것에 중독된 현상에 있다고 본다. 욕망과 집착에 다름이 아니다. 인터넷, 권력, 음식, 스포츠, 미디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류는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고통 받는 인간과 병든 사회를 치료하기 위해 나선 의왕(醫王)으로서의 불타의 가르침을 이제 이 세계에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실천해야 할 때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483호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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