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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불교 어산작법학교 학장 법안 스님

불성 일깨우는 ‘하늘의 소리’는 법열이 품은 불과(佛果)

태어나 백내장으로 실명
관세음보살 정근 속 ‘개안’

햇살내린 묘지에 누워 사색
‘인천의 사표’ 결심 출가단행

영산재 1세대 일응·송암
사사하며 ‘범패 이수’

의단독로·삼매현전
의례는 참선이자 염불

일심정성 결여된 의식
‘환희’ 일으킬 수 없어 

​​​​​​​어산·범패 전문도량 필요 
‘조계종 영산재’ 시연 기대 

법안 스님은 “잠에서 깨어 난 순간부터 다시 잠에 들기 전까지의 모든 일상이 수행자에게는 의례”라고 강조했다.
법안 스님은 “잠에서 깨어 난 순간부터 다시 잠에 들기 전까지의 모든 일상이 수행자에게는 의례”라고 강조했다.

교리가 신앙의 내용이라면, 의례는 상징적 표상의 행위다. 신체를 통해 외향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의례라는 얘기다. 세속의 공간도 성스러운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의례는 신앙공동체를 유지·성숙시키는 원동력이다. 

불교의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의례의 설행체계 확립에 매진하는 연구소가 있다. 조계종의례위원회(2011.4 출범)와 함께 의례의 한글·현대·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불교의례문화연구소(2011.9 출범)다. 연구소 개원 이후 매년 2회씩 ‘의례와 종교문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할 만큼 의례 분야의 학술토대를 다져가는데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계종의례위원회는 지금까지 ‘반야심경’ ‘천수경’ ‘칠정례’ ‘종성’ ‘신중예경’ 등을 한글화했다. 조계종 불교 어산작법학교 학장 법안(法眼) 스님은 현재 불교의례문화연구소 이사장이자 조계종의례위원회 위원이다. 2019년 2월 동희, 정오 스님과 함께 조계종 어산종장으로 지정됐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스님이었기에 어린 시절은 마산의 한 절에서 올곧이 보냈다. 공부는 좀 하는 편이었지만 운동에 유독 소질 있어 특기생으로 학교를 다녔다. 묘지 위에 내린 햇살 사이로 스스럼없이 누워서는 곧잘 사색에 잠기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접어들었다. 그날도 누군가의 묘지에 누운 채 하늘을 품었더랬다. 한 생각이 스쳐갔다. 

“운동 계속해서 훗날 교편을 잡을까? 아니지. 인천의 사표 되는 길이 있는데!”  

펜을 내려놓고 목탁을 들었다. 일상의 집전의식은 그때 다 터득했다. 영어사전을 내려놓고 옥편을 펼쳤다. 경전을 보기 위함이다. 부친인 동화 스님이 한 마디 일렀다.

“이 절에서도 승복 입고 법을 구할 수 있다!”
“조계종으로 출가하겠습니다.”

아들이자 후학의 뜻이다. 동화 스님은 평소 교류가 있던 도문 스님과 은사 인연을 맺기 바랐다.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 천마산 중생사로 걸음해 1980년 도문 스님(중생사 회주)을 친견하고 법안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명에 담긴 뜻이 깊다. 

법안 스님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눈 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염불뿐이라 결단한 동화 스님은 어린 아들에게 관세음보살 정근법을 일러주었다. ‘관세음보살’만이 암흑 속 한 줄기 빛임을 직감했을 아이는 신명을 다해 명호를 새겼을 터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의사·의대생들이 마산 동네로 진료봉사를 왔다. 그 의료진과 인연이 닿아 개안(開眼) 수술을 받고 생전 처음으로 무지개를 보았다. 관세음보살 가피가 아닐 수 없다. 법안 스님은 지금도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다. ‘육신의 눈이 아닌 법안으로 세상을 보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배어 있는 법명이다.
 

법안 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영산재 범패 이수자다. (사)어산작법보존회 제공
법안 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영산재 범패 이수자다. (사)어산작법보존회 제공

종교에 있어 ‘성스러움·거룩함’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그 거룩함을 유지·보존케 하는 건 의례다. ‘종교에서 의례를 제외하면 철학’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연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례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것을 분명히 해야 불교의 원천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기에 서울 안암동 조계종 불교 어산작법학교로 향했다. 

법안 스님이 중앙승가대에서 전공한 건 사회복지였는데 대학 졸업(1988.2) 10년 후 영산재 범음 전수생(1998)으로 이름을 올리더니 이내 영산재 범패이수자로 지정됐고(2003) 조계종 어산작법학교 교수사를 맡았다(2008). 사회복지에서 범패로 급선회한 연유가 궁금했다. 큰 원력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는데 ‘도반 권유’였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법안 스님은 중앙승가대(안암동 소재)에서 인묵(현 조계종 어산어장) 스님의 강의를 통해 범패를 처음 접했다. 4학년 방학 때는 전주 보문사에서 살며 일응 스님(一鷹·2003 입적. 생존 당시 ‘작법무’ 유일 기능보유자)으로부터 소리를 배웠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그러나 강원 교육에 목말랐던 법안 스님은 중앙승가대 졸업 직후 소리를 뒤로한 채 직지사 승가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1988.3). 1년 정도 공부를 잘 지어가고 있었는데 인묵 스님에게 소리를 배웠던 도반들이 직지사로 찾아왔다. 

“법안, 이왕 시작한 소리 매듭짓자고!”

강원에 머무르면서도 ‘끊어진 소리’ 잇고 싶었던 것일까! 강원 과정을 접고 서울  대각사 노전을 보며 범패에 심혈을 기울였다. 태고종 동방불교대학에 입학(1990) 한 법안 스님은 영산재 최고봉 송암 스님(松巖·2000 입적. 생존 당시 영산재 기능보유자)의 강의가 열리는 평창동 효동선원으로 달려가 4년 동안 사사했다. 이후에도 송암 스님이 입적에 들기 전까지 찾아뵈며 소리를 배웠고 2003년 범패 이수자로 지정됐다. 은사 도문 스님도 제자의 소리를 인정이라도 한 듯 건당 때 묘성(妙聲)이라는 법호를 내렸다. 

영산재 1세대 송암, 일응 스님과 그 뒤를 잇는 인묵 스님의 소리는 어떻게 다를까? “결코 평을 하는 건 아니다”라며 나름의 감흥을 전했다.

“인묵 스님의 소리는 저 깊은 심중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입니다. 일응 스님의 소리(호남범패)에는 호남 특유의 육자배기 미감이 배어있습니다. ‘소리에도 묘미가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송암 스님의 소리(서울범패)는 ‘청아함’ 그 자체입니다. 아주 맑고 깨끗합니다. 한 시대에 세 스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이요, 복이었습니다.”

범패에 정통한 법안 스님은 불교의례로 눈을 돌렸다. 사라진 의례를 복원하고, 퇴색된 의식을 장엄할 수 있는 길이 ‘학술조명·연구’를 통해 열릴 수 있음을 통찰하고는 정산(당시 경국사 주지)·법상(당시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스님을 비롯해 신규탁·김호성·이성운 선생 등 뜻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갔다. 그 노력의 결과로 불교의례문화연구소가 출범했다. 초대소장은 인묵 스님이 맡아 주었다. 

“의례연구 논문을 써도 발표할 장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간혹 발표해도 열띤 토의·토론이 없다 보니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누가 무엇을 깊게 연구하는지도 알기 어려웠고,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인연이 닿지 않아 서로의 학문적 성과·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웠습니다. 불교의례는 문학·건축·미술·음악·무용 등 전 분야에 스며있는 의례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살펴야 제대로 조명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범음산보집(梵音刪補集, 수륙재문 중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을 추려 모은 의식집)에 ‘대령(對靈, 영혼에게 법식을 베푸는 의식)은 일주문 밖에서 하고, 관욕(灌浴, 영혼을 목욕시키는 의식)은 누각이나 큰 방에서 올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일주문과 누각에 담긴 상징과 배치 등의 불교건축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대령·관욕에 담긴 의미를 적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따른 의례절차를 시연할 수 있는 겁니다. 감로탱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바라 등장 시기와 그에 따른 작법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 칠불암에서 철야기도를 했던 법안 스님은 이른 아침이면 신선암 마애불을 친견하곤 했다.
경주 남산 칠불암에서 철야기도를 했던 법안 스님은 이른 아침이면 신선암 마애불을 친견하곤 했다.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심포지엄에는 전문가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해 해를 거듭할수록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불교의례 논문 집필자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불교의례 연구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이 연구소는 거목으로 다가온다. 

“큰 나무가 내어주는 품 넓은 그늘이 불교계에 드리워졌습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드렸다. 예불, 수륙재, 생전예수재가 의례인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혹자는 참선도 의례에 속한다고 한다. 의례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의례는 곧 예경입니다. 부처님을 찬탄하며 표출된 그 모든 행위(몸짓)가 의례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다시 잠에 들기 전까지의 모든 일상이 수행자에게는 의례입니다. 공양할 때, 해우소 갔을 때, 가사를 수할 때도 그에 따른 게송·진언이 있습니다. 입적에 들면 다비도 치르게 됩니다. 우리는 참선도 수행의례 범주에 포함시킵니다. 의단독로(疑團獨露)·삼매현전(三昧現前)·업장소멸(業障消滅)·경불지덕(敬佛之德) 각각의 의례가 참선·염불·주력·예불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열반 여정에서 마주하는 건 의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매현전 염불’을 감안하면 범패도 궁극에는 수행의례에 포함시킬 수 있을 법하다. 

“넓은 의미로는 부처님 찬탄하는 모든 소리가 범패입니다. 그러니 염불도 범패입니다. 물론 고차원의 전문성을 띤 범패란 영산재 때 부르는 안채비소리, 홋소리, 짓소리 등을 이릅니다. ‘화엄경 약찬게’를 독송하며 ‘다음 대목이 뭐지?’ 생각하면 그 약찬게 못 외웁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외우고 수 천 번, 수 만 번 읊다 보면 삼매 속에 독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늘의 소리’ 범패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범패 소리도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소리하는 중에 번뇌가 끼어들면 엉뚱한 곳에 떨어지고 맙니다. 이런 소리로는 자신은 물론 그 소리를 듣는 대중의 심중도 울릴 수 없습니다. ‘범패는 구전심수(口傳心受)의 묘미를 갖고 있다’고 설파한 송암 스님의 일언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범패의 신묘한 성음(聖音)을 기록할 수는 없다. 오로지 입으로 소리를 전하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송암·일응 스님께서 보이신 소리는 삼매 속 법열이 충만한 범패이기에 자신은 물론 타인의 불성도 일깨웁니다. 그 경지의 범패라면 불과(佛果)라 할 수 있습니다.” 

법안 스님은 범패에 매진하는 사람들 중에는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염불시수·念佛是誰)?’라는 화두를 드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불교의례를 재정립하기 위해 용성 스님을 필두로 이능화, 권상로 등의 선각자들이 고군분투했다. 이능화 선생은 어산이 쇠퇴함에 따라 각종 불교 재의식이 무미건조해졌다고 진단하며 의식을 좀 더 거룩하게 장엄해야 한다고 주창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현재도 유효하지 않을까?

“저는 현 시점에서는 소리장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한 사람이 내는 ‘나무아미타불’과 1000명이 일시에 내는 ‘아미타불’은 숭고함에 비춰볼 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정근이 지속될수록 신심도 높아져 그 소리는 제 스스로 장엄함을 더해 갑니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삼보사찰 새벽예불에서 가슴 벅찬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10명이든, 100명이든 대중이 운집해 있을 때는 지극한 마음으로 일시에 독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님들의 선창과 재가불자님들의 후창으로 이뤄진 정근도 있는데 그럴 때는 명료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전에 비해 조금만 더 집중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건이 되면 꼭 해내고 싶은 불사가 있는지를 여쭈어보았다.

“어산작법학교와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에 이어 총림 최초로 통도사에 염불대학원이 개원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저는 조계종의 어산·범패 맥을 면면이 이어갈 수 있는 전문교육도량이 세워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언제, 누구에게든 전하고 배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조계종 차원의 영산재가 완벽하게 시연되는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법안 스님은

- 1986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 계사로 비구계.
- 1988년 중앙승가대 졸업.
- 1999년 개운사 주지.
- 2000년∼ 대성사 주지.
- 2003년 영산재 범패 이수.
- 2013년∼ 조계종 어산작법학교 학장. 조계종 의례위원회 위원. 
- 2016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졸업.

 

[1483호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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