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르고 짓는 죄

새들의 죽음과 죄의 무게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 죄냐고 묻는다면 알고 짓는 죄가 더 큰 죄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훨씬 악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달리 말한다. ‘밀린다왕문경’이라는 경전에서 밀린다왕이 나가세나 스님에게 묻는다.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중에 어느 쪽이 더 큰 죄입니까?” 나가세나 스님이 대답한다. “불에 달궈진 쇳덩이를 알고 잡는 사람과 모르고 잡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큰 화상을 입겠습니까? 모르고 잡는 사람이 더 크게 심하게 화상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르고 짓는 죄의 과보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새들의 죽음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건물 유리벽이나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이 해마다 800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늘 당장 2만 마리의 새들이 투명 유리벽에 부딪쳐 목숨을 잃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새들까지 사라지는 죽음의 악순환에 환경부는 투명유리 건물이나 방음벽에 일정 간격으로 무늬를 넣어 새들의 죽음을 막는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의 기호에 따른 단순한 선택이 학살이라고 봐야 할 만큼 엄청난 새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알지 못하거나 인식을 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죄나 잘못은 죄의식이 없기에 반성도 없고 그렇기에 개선의 여지도 없다. 인간의 무지로 엄청나게 죽어나간 새들의 비극이 그렇다.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옭죄고 있는 환경훼손이나 극심한 기후변화에도 우리는 여전히 플라스틱을 비롯한 온갖 환경오염 물질들을 죄의식 없이 버리고 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행동으로 타인에게 평생에 걸친 고통을 주면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짓거나, 지게 될 잘못이 얼마나 될까? 새들의 참혹한 죽음이 혹시 모르고 짓는 허물은 없는지 나와 주변을 둘러보라는 무언의 경고로 들린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83호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