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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유마거사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연약하고 비참한 사람들 삶으로 들어가 아픔 치유

‘청정 무구로 불리는 자’ 유마힐
중생의 병을 고치는 대의왕 염원
찬바람 맞으며 핀 매화 향기처럼
번뇌 무성한 곳서 보리 꽃 피워

아파서 도포를 덮고 있는 듯한 경주 석굴암 감실조각상 중 유마힐.
아파서 도포를 덮고 있는 듯한 경주 석굴암 감실조각상 중 유마힐.

본래는 부처의 모습이지만 병에 걸려 도포를 둘러쓰고 침상에 웅크리며 앉아 있는 거사가 있다. 그는 뭇 생명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고 말하며 병에 걸린다. 그가 바로 유마거사다. 거짓 아픈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파한다. 아픈 자만이 아파하는 사람의 아픔과 괴로움을 안다.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짊어지는 동체대비의 위대한 사랑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자신의 고통을 읽는 아픔과 같은 것이다. 엔도 슈사쿠의 시각을 빌어 김승철은 그렇게 말한다. 병든 사람의 치유는 그의 마음으로 듣고 읽는 데서 시작한다. 

유마(維摩)는 유마힐(維摩詰)의 줄임말로 ‘청정 무구로 불리는 자’라는 뜻이다. 이 유마거사의 삶과 보살행을 잘 보여주는 경전이 ‘유마경’이다. 유마거사는 재가의 보살이다. 재가자요 보살이라 하지만 그는 이미 부처의 마음이다. 다만 아파하는 중생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성숙시키고자 백의(白衣)를 입은 거사의 모습을 취했을 뿐이다. 그는 번뇌가 치성한 세계로 들어와 바로 이 세계에서 불국토를 만들어 나간다. 불국정토를 저 먼 곳에서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몸 비비며 살아가는 바로 이곳에서 실현한다. ‘유마경’에 등장하는 부처님도 문수보살도, 그밖에 모든 등장인물도 같은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이 유마다. 유마거사는 또한 문수보살이며 친척이요 벗이자 이웃이다. ‘유마경’에서 “보살은 뭇 생명을 위하여 불국토를 취한다”고 하거나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라는 말도 유마거사가 부처님의 이름을 빌어 한 말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유마는 천하고 빈궁한 사람이요 음탕한 여인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모든 마구니와 모든 외도들이 다 나의 모심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마구니는 생사를 좋아하고, 보살 역시 생사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에서도 그런 의미가 엿보인다. 그러면 유마거사가 왜 아픈지, 그 병에 걸린 사연을 들어보자.

“어리석음 때문에 애욕이 있게 되면 병이 생깁니다. 뭇 생명이 아프므로 저도 병을 앓고 있습니다. 만약 뭇 생명의 병이 사라지면 제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보살은 모든 존재를 위하여 생사의 길에 들어섭니다. 생사가 있으므로 병이 있습니다. 만약 뭇 생명이 병을 여의면 보살의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어 유마거사는 말한다. “보살이 병든 것은 대비 때문입니다.” 대비란 타자의 슬픔과 함께하며 그의 고통을 제거해주는 연민의 마음이다. 보살은 연약하고 추하고 비참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가장 비천한 걸인에게 부처님 대하듯 보시하고 공양을 올린다. 그런 의미에서 보살에게는 아픈 생명들이 살아가는 이곳이 바로 도량이다. 거사의 생활은 범부의 생활도 아니고 성자의 생활도 아니다. 열반에 머무르지도 않고 생사에 머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이 생사 속에서 열반을 실현한다. 번뇌를 바탕으로 여래의 종자가 뿌려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문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락없는 유마거사의 말이기도 하다. 

“일체의 번뇌가 여래의 종자가 된다는 것은, 비유컨대 거대한 바다 밑까지 내려가지 않고서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석 구슬을 얻을 수가 없듯이, 그와 같이 번뇌의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일체 지혜의 보배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번뇌가 치성한 곳에서 파릇파릇한 보리의 꽃을 피운다. 눈물 속에 핀 꽃이 훨씬 아름답고 숭고하다. 찬바람 맞으며 핀 매화 향기 진하지 않던가. 그러기에 사바세계는 다른 타방정토에서 맛보지 못한 10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아프고, 화내고, 탐내는 사람 등등을 지혜와 자비로 껴안고 가는데서 오는 감동의 물결이다. 허공 속에 씨를 뿌려도 끝내 새싹이 돋아나지 않지만 인분이 섞인 거름 땅에서는 싹이 무성하게 자란다. 연꽃은 흙탕물에서 핀다. 물이 너무 깨끗하면 물고기가 놀지 못한다. 좀 빈틈이 있어야 바람이 들어온다. ‘유마경’에는 유마거사의 발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구절은 거사의 발원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몸은 덧없는 것이라고 설하지만 그 몸을 싫어하고 버리라고 설하지 않습니다.  몸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열반을 좋아하라고 설하지 않습니다.  이 몸은 무아라고 설하지만 그래도 중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라고 말합니다. (…중략…) 자기의 병을 계기로 지난 날 쌓은 선한 마음씨들을 상기하며 청정한 방법으로 살아갈 것을 염원합니다. 근심 걱정 괴로워하지 않고 언제나 용기 백배해서 정진하게 합니다. 모든 중생의 몸의 병, 마음의 병 다 고치고 편안케 하는 대의왕이 되겠다는 큰 소원을 발합니다.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병든 보살을 위로하고 환희에 넘치게 해야 합니다.”(이기영 역해, ‘유마힐소설경’)

이러한 보살의 길을 유마거사는 끝없이 간다. 그 길이 험하고 힘들지라도 대비심으로 가득하기에 전혀 싫증내거나 피로감이 없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차별과 분별을 재운다. 분별에서 무분별을 본다. 뭇 생명(중생)에게서 부처님을 본다. 번뇌에서 보리를 본다. 그는 서로 환대하기 힘든 두 대립 항을 자유롭게 오고 가며 환대한다. 때로는 원망과 비난의 목소리도 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으로 분별을 떠나니 확 트이며 자유롭다. 분별을 떠나 아픈 사람의 마음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아픔이 치유된다. 분별을 떠나면 이러저러한 대립된 견해에 더렵혀지지 않기에 마음 또한 청정하다. 

유마거사는 이렇게 웅변을 토하듯 거침없는 대화로, 시로, 때로는 침묵과 역설로, 왜 보살로 살아야 하는지, 아픈 사람과 함께 길을 걸어야 하는지 가슴으로 말한다. 그래서 거사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보리심을 발한다.

석굴암은 불교의 종교성을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의 백미다. 최완수 선생은 석굴암은 ‘유마경’을 그 사상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한다.  
석굴암 본존불 뒤편 천정 맨 아래 부분에는 뒤가 막힌 10개의 아치형 공간이 있다. 그곳을 감실(龕室)이라 한다. 거기서 유마거사상은 수건을 말아 머리 위에 인 듯 두건을 쓰고 몸에 도포형태의 옷을 걸친 채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대화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픈 몸을 두건과 도포로 가려 잔뜩 움츠린 환자의 모습이다. 거사는 몸이 욱신욱신 쑤셔오는 통증을 느끼면서 가장 낮은 자세로 병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83호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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