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김홍도의 ‘노승염불(老僧念佛)’
30. 김홍도의 ‘노승염불(老僧念佛)’
  • 김영욱
  • 승인 2019.04.02 13:35
  • 호수 14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속 여래와 마주하다

단원 김홍도 불교색 짙은 작품
이백의 ‘승가가’ 수묵채색으로
형식 구애없는 부드러운 모습
노승의 수행·성품 세밀히 담아
김홍도 作, ‘노승염불’,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19.7×57.7㎝, 간송미술관.
김홍도 作, ‘노승염불’,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19.7×57.7㎝, 간송미술관.

呼呼呼入妙(호호호입묘)
念念念歸眞(념념념귀진)
呼念相交處(호념상교처)
如來卽現身(여래즉현신)

‘부르고 불러 입묘(入妙)를 부르고 외고 외워 귀진(歸眞)을 염송하나니. 호불과 염불이 서로 만나는 곳에 여래께서 곧 몸을 드러내신다네.’ 치익(致益, 1862~1942)의 ‘염불(念佛)’.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은 가끔 한 승려와 함께 삼거(三車, ‘법화경’ 비유품에서 말하는 우거·녹거·양거)를 이야기하곤 했다. 얼마간 지내면서 보니, 그의 규범은 마치 가을 하늘의 밝은 달빛에서 얻은 듯했고, 마음은 여름날의 푸른 연꽃 빛깔을 닮아 보였다. 법호를 승가(僧伽)라고 부르는 이 승려는 본래 남천축(南天竺)에서 살았는데, 불가의 수행을 위해 멀고도 먼 이 나라에 왔다고 한다.

어느 날, 이백이 그에게 “염불을 몇천 번이나 외웠는지요?”라고 물으니, 그가 미소 지으며 “항하(恒河,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다시 모래알만큼 외웠습니다”라고 조용히 답했다. 이에 감탄한 이백은 ‘승가가(僧伽歌)’라는 시를 남겼다.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는 만년에 이르러 불교에 귀의한 듯, 불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노승염불’은 화면에 적힌 “입으로 항하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다시 모래알만큼 외운다(口誦恒河沙復沙)”라는 짧은 글을 통해 이백의 승가가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노승은 합장하며 염불을 외고, 시동은 노승의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옆에 서 있다. 담담한 먹의 농담으로 펼쳐낸 필선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듯 자연스럽고, 느슨한 옷 주름은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다. ‘반드시 마음으로 함이 있어야 한다(必有以心)’라는 작은 인장을 더해서 노승의 참된 수행과 고결한 성품을 은연중에 드러낸 김홍도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본래 염불은 글자 그대로 부처를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의 모습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떠올리는 것을 의미했지만, 점차 부처의 명호(名號)를 부르거나 외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지금도 절집과 사찰에서 흔히 들리는 ‘나무아미타불’이 바로 그것이다. 부르고 욈을 반복하면, 모든 부처가 눈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반주삼매(般舟三昧)’가 펼쳐진다고 불경에 전한다.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외고 다시 그만큼을 왼 승가는 아마도 ‘반주삼매’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백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한 마디로 파라이(波羅夷, 가장 엄하게 금한 계율)를 모두 흩어지게 하고, 다시 예를 올리니 가벼이 지은 죄도 모두 없애주시네”라고 하여 승가로 인해 자신이 지닌 욕망과 작은 죄마저 모두 비워냈음을 밝혔다. 김홍도 또한 만년에 이르러 모든 것을 비우고 정토(淨土)로 떠나기 위한 염원으로 승가가 속 ‘반주삼매’에 이른 노승을 붓으로 불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삼매의 묘경(妙境)으로 들어가 내 마음의 여래를 마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신을 가다듬고 부르고 외자. 

“나무아미타불”.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83호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